[여기는 칸]"뉴욕 이민자의 침묵과 일상"...진미송, 칸 영화제 '라 시네프' 2등상 수상

1 week ago 8

뉴욕의 한국계 이민자 가족을 조용히 따라가는 영화 <사일런트 보이시스>가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6시 (현지시각)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발의 브뉴엘관에서 열렸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진미송 감독(왼쪽)과 김종만 배우가 기뻐하고 있다.  / 사진. © 김은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진미송 감독(왼쪽)과 김종만 배우가 기뻐하고 있다. / 사진. © 김은진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한국 감독 진미송(Nadine Mison Jin)이 연출했다. 영화는 과장된 사건이나 감정의 폭발 대신, 말해지지 않는 침묵과 일상 속 균열들을 담담하게 응시하며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시상은 한국계 배우·작가·아티스트이자 올해 라 시네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지민이 직접 발표하고 시상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었다. 박지민은 시상 무대에서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것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고향이 아닌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난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타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각 인물이 거의 침묵에 가까운 정적 속에서 품고 있는 말해지지 않은 언어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타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진미송 감독(오른쪽)과 박지민 심사위원  / 사진. © 김은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진미송 감독(오른쪽)과 박지민 심사위원 / 사진. © 김은진

칸 현장에서 만난 진미송 감독과 배우 양숙형, 김종만은 작품이 출발하게 된 과정부터 이민자의 현실, 그리고 '한국 영화'라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까지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 감독은 <사일런트 보이시스>가 미국 속 아시아 이민자 가족을 다루지만, 흔히 소비되는 이민 서사의 방식대로 '이국적인 아시아'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진 감독이 주목한 것은 외로움과 상실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미국에는 아시아 이민자 가족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는 한국 전통 음식이나 의상 같은 걸 중심에 두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은 전통적인 성장 서사 구조를 일부러 비틀면서 만들어졌다. 진 감독은 학교에서 배운 영화 문법을 졸업작품에서는 거꾸로 뒤집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늘 한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저는 가족 네 명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한 사람보다 숲 전체를 관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에 참여한 양숙형, 김종만 배우는 실제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들이기에 작품 속 감정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종만은 미국 생활 15년 동안 직접 겪은 경험을 떠올렸다.

"뉴욕에 처음 갔을 때는 비자 문제도 있고 언어 문제도 있고 정말 쉽지 않았어요. 백인 중심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경험했죠."

양숙형 배우는 영화 속 인물에게 동화되는 감정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유진이라는 인물이 바이올린을 팔아야 하는데, 그게 자기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리는 느낌처럼 다가왔어요. 저도 한국에서는 배우였는데 미국에 와서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감정을 느꼈거든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왼쪽부터) 김종만 배우, 진미송 감독, 양숙형 배우.  / 사진. © 김은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2등상을 받은 <사일런트 보이시스>의 (왼쪽부터) 김종만 배우, 진미송 감독, 양숙형 배우. / 사진. © 김은진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한국계 감독이 미국 학교에서 만든 영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한국 영화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진 감독은 "영화에 대한 권리가 학교가 아닌 감독에게 귀속되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방침 덕분에 한국 영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김종만 배우도 같은 맥락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에서는 한국 감독이 만들면 한국 영화로 본다. 우리도 감독을 따라가야 한다. 감독의 영화니까."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그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이민자적 질문을 안고 칸 무대에 섰다.

더욱이 진 감독의 관심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회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는 자신이 속했던 한국 사회의 특권 구조를 다뤄보고 싶다고 밝혔다.

"저는 강남 8학군에서 자랐고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사교육과 유학 환경 속에서 컸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방향성을 잃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왜 한국 사회는 특정 계층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선망하는지, 그런 구조가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침묵으로 말을 거는 영화를 만든 감독은, 다음엔 한국 사회의 구조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진미송 감독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심사위원 박지민(오른쪽)이 2등상을 수상한 진미송 감독에게 시상하고 있다. / 사진. © 김은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심사위원 박지민(오른쪽)이 2등상을 수상한 진미송 감독에게 시상하고 있다. / 사진. © 김은진

칸 국제영화제의 ‘라 시네프(La Cinef)’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단·중편 영화를 소개하며 차세대 영화인을 발굴하는 칸 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이다. 올해는 전 세계 영화학교에서 출품된 2,750편 중 실사 14편, 애니메이션 5편 등 총 19편이 본선에 올랐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수상작]

• 1등상: <레이저 가토(LASER-GATO / LASER-CAT)>, 루카스 아처(Lucas Acher) 감독, 미국 뉴욕대학교

• 2등상: <사일런트 보이시스(Silent Voices)>, 진미송(Nadine Mison Jin)감독,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영화과

• 3등상(공동 수상)
- <알드리 노크(ALDRIG NOK / NEVER ENOUGH)>, 줄리어스 라구트 라르센(Julius Lagoutte Larsen) 감독, 프랑스 라 페미스(La Fémis)
- <그로잉 스톤스, 플라잉 페이퍼스(GROWING STONES, FLYING PAPERS)>, 루즈베 게제르세 & 소라야 샴시(Roozbeh Gezerseh & Soraya Shamsi) 감독, 독일 바벨스베르크 콘라트 볼프 영화대학교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는 최근 들어 한국 작품의 수상 소식이 꾸준히 들려오고 있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인 윤대원 감독의 <매미>(2021)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인 황혜인 감독의 <홀>(2023)이 각각 2등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제78회(2025년)에는 KAFA 출신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이 한국 작품 최초로 1등상을 받은 바 있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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