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대통령 대구탕집이죠?” 계엄 이후 발길 뚝 끊긴 용리단길 숨통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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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간 대구탕 골목 가보니

군무원 상권, 계엄 이후 매출 줄어
‘용리단길’ 조성에 골목상권 고통
“임대료 올라 직원 쓰기도 어려워”

지난달 26일 용산 골목상권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 [사진 = 대통령실]

지난달 26일 용산 골목상권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 [사진 = 대통령실]

“대통령이 와서 뭐라세요?”

지난 2일 낮 12시께.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역 근처 일명 ‘삼각지 대구탕 골목’.

용산 대통령실 앞 대표적인 골목상권인 이곳은 몇 년 전부터 소위 ‘뜬다’는 인근 용리단길과는 다른 느낌으로 예스러운 골목골목마다 노포가 즐비한 곳이다.

이곳 터줏대감격인 한 대구탕집에는 점심시간이 되자 2층까지 손님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깜짝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가게 안에 자리를 잡고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미나리 추가까지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하는 단골 사이로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사진을 찍는 ‘관광객형’ 손님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바삐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직원에게 “대통령은 어디 앉으셨나”, “대통령이 와서 하신 말씀이 있나”란 질문도 들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증샷’도 눈에 띄었다.

지난 2일 방문한 서울시 용산구 용리단길이 점심장사가 끝나자 거리가 한산하다. [박성렬 기자]

지난 2일 방문한 서울시 용산구 용리단길이 점심장사가 끝나자 거리가 한산하다. [박성렬 기자]

한 직원은 “대구탕이 주메뉴라 날씨가 너무 더우면 낮엔 손님이 좀 줄기도 하는데, 대통령이 다녀가시곤 한동안 날씨 영향 없이 손님이 계속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원래 손님이 많기 때문에 늘었다기보다 꾸준히 많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관저 밖 시정(市井) 식사로 이 삼각지 대구탕 골목을 찾았다. 방문 당시 “골목상권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민생이 산다”고 강조해 영세 상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대구탕 골목과 근방 용리단길엔 상인들의 기대감과 한숨이 뒤섞였다.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며 ‘경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임대료와 재료비, 인건비 상승 등을 우려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해온 A씨는 “대통령 방문 후 덩달아 손님이 조금 늘긴 했다”면서 “이 골목은 전형적인 공무원 상권이다. 보훈처, 국방부, 전쟁기념관 등이 근처다 보니 공무원 상대로 점심에 바짝 장사하는 건데 계엄 이후 군인들이 눈치 봤는지 (건물에서) 안 나와 매출이 많이 줄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용리단길 조성에 오히려 골목상권 어려움은 커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용리단길이 뜨면서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나 카페만 잘 되지, 우리같이 오래된 밥집은 손님은 크게 안 늘고 임대료만 올랐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월세가 100~2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00~800만원이다. 우리 집 앞 식당터는 3년 새 가게가 4번이나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서올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일명 ‘삼각지 대구탕 골목’. [박성렬 기자]

서올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일명 ‘삼각지 대구탕 골목’. [박성렬 기자]

지난 2017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용리단길은 인근으로 하이브 사옥 등 여러 대형 건물과 대기업 본사가 들어서며 특색 있는 오피스 상권으로 변모해 주말에도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올해 5월을 기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강남과 종로 등 전통적인 주요 상권 매출이 급감하거나 현상 유지에 그치는 반면, 용리단길과 신용산 지역은 각각 343%와 128%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도 드러난 셈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심 인근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며 외부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돼 임대료 상승 등 기존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밤잠을 설친다는 상인도 있었다. 한식당을 하는 C씨는 “보리쌀이 저번엔 5만원인데 이번엔 7만원인 식이다. 재료를 살 때마다 값이 천정부지 오른다”며 “속이 상해 배달 받을 때 투덜거렸더니 ‘제가 올린 건 아니잖아요’라고 하더라. 누가 도대체 이렇게 올리는 거냐”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용리단길 인근 식당. [박성렬 기자]

용리단길 인근 식당. [박성렬 기자]

지난해 겨울, 메뉴 가격을 1000원 올렸다가 단골들이 발길을 끊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그는 “1000원 올랐다는 소문이 도니까 단골분들이 문 앞에서 서성이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더라”라며 “그때 심장이 철렁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다시 원래 가격을 돌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임대료는 오르는데 손님들은 새로운 가게도 가보니까 힘들어도 직원 쓰기가 어렵다. 오전 8시30분께 나와 오후 9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12시간 가까이 혼자 가게를 보며 점심 때 딸이 가게 일을 잠깐 도와준다”면서 “인건비를 아끼고 1000원을 다시 내린 거다. 손님 끊기면 장사도 끝이다. 매일 절벽 앞에 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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