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엘바이오가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기술수출한 ‘그랩바디-B’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판도를 바꿀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알츠하이머병 등 치료에 가장 난관으로 꼽히는 뇌혈관장벽(BBB)을 뚫고 약물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GSK는 그랩바디-B를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의 핵심으로 삼을 계획이다.
◇뇌 장벽 통과하는 ‘입장권’
크리스토퍼 오스틴 GSK 연구기술 부문 수석부사장(SVP)은 7일 그랩바디-B에 대해 “GSK가 새롭게 개발할 파이프라인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고령화로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퇴행성 뇌질환 시장에서 새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이 더딘 이유는 약물이 BBB를 통과하기 어려워서다. 빽빽하게 뇌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뇌혈관은 뇌세포를 보호하지만 약물을 개발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랩바디-B와 같은 ‘BBB 셔틀’은 뇌세포로 침투할 수 있는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특정 수용체에 결합한 뒤 약물이 뇌혈관을 통과해 뇌세포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BBB 셔틀은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에이비엘이 2022년 1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최대 1조3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ABL301’도 그랩바디-B를 기반 삼아 발굴한 물질이다. 지난해 임상 1상을 완료했고 올해부터 사노피가 임상 2상을 한다.
◇뇌질환 치료제 개발 판도 바꿀까
인류의 수명 연장 및 고령화로 퇴행성 뇌질환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치료제는 제한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약 6900만 명이며 이는 2050년 1억50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바이오젠·에자이의 ‘레켐비’, 지난해 일라이릴리의 ‘키순라’ 등이 미국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완치가 아닌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수준인 데다 부작용 우려도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BBB 셔틀을 이용한 치료제가 긍정적 성과를 내 주목받고 있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로슈는 BBB 셔틀을 부착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트론티네맙’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4일 임상 1b·2a상 중간 분석 결과에서 고용량 환자 81%의 뇌 내 아밀로이드 플라크 수치를 기준 이하로 낮췄다는 임상 성과를 발표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에서 주로 발견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해 질병의 증상을 개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안전성도 우수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대표 부작용인 뇌미세출혈, 뇌부종 등을 나타낸 환자도 경쟁 약물 대비 적었다. 에이비엘의 그랩바디-B는 로슈의 트론티네맙과 비교해 강점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트랜스페린 수용체(TfR)을 사용한 로슈와 달리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 수용체(IGF1R)를 표적으로 했다.
이상훈 에이비엘 대표(사진)는 “IGF1R은 뇌 발현율이 32.7%로 TfR(5.6%) 대비 높다”며 “뇌가 아닌 다른 부위에서도 발현되는 TfR과 달리 IGF1R은 뇌에서만 발현된다”고 설명했다. 약물이 뇌 안까지 더 잘 도달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플랫폼 자체의 가능성이 증명됐기에 향후 다른 회사와의 추가 기술이전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