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과 대기자금 성격의 투자자 예탁금이 이달 들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 전쟁과 미·중 갈등, 경기 침체 우려가 이어지며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글로벌 경기와 무관하게 안정적 이익을 낼 수 있는 필수소비재를 주목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 관세 불확실성에 거래대금 급감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총 5조1798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최소치다. 외국인(-3085억원)과 기관(-655억원)이 동반 순매도하며 코스피지수는 보합권(0.2%)에 머물렀다. 관세청의 수출 실적 발표가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달 20일까지의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5.2% 위축됐다. 특히 미국 수출이 14.3% 급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 심리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거래는 미국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이달 들어 크게 줄었다. 4월 유가증권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7조9038억원으로, 지난달(10조6873억원) 대비 26% 감소했다. 올 2월 12조2194억원보다는 35.3% 쪼그라든 수치다.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 또한 지난 18일 기준 53조8248억원으로, 지난달 말의 58조4743억원보다 4조원 넘게 사라졌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공포에 질린 자금이 증시를 떠나 안전자산으로 피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증시를 주도하던 조선주 등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주가는 이날 각각 2.09%, 3.65% 하락했다. 노무라증권이 전날 “미국 관세 때문에 선박 수요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하면서다.
◇ 증시 피난처 된 소비재 주식
투자자들은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내수·필수소비재를 주목하고 있다. 수출이 위축되더라도 내수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종목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이달 들어 유통주 등 소비재 주가는 오르고 있다. 신세계가 이달 들어서만 13% 급등했고, 삼양식품과 KT&G도 각각 11.3%, 9.4% 상승했다. 올 들어 40% 뛴 이마트 주가는 이달에도 9.1% 상승세다. 증권가에선 이마트가 올해 445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471억원)의 10배에 가까운 전망치다. 방어주 성격의 SK텔레콤도 이달 4.5% 올랐다.
내수주 강세는 업종 지수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전력과 지역난방공사 등으로 구성된 KRX 유틸리티 지수는 이달 9.36% 올랐다. 이마트, KT&G, 삼양식품 등이 주요 종목인 KRX 필수소비재 지수도 같은 기간 6.03% 상승했다. 반면 KRX 반도체와 자동차 지수는 각각 3.81%, 4.8% 하락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4년간 부진하던 필수소비 업종은 성장주를 따라잡을 여력이 남아 있다”며 “내수 점유율이 높은 ‘로컬 챔피언’의 부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는 최근 “글로벌 무역 전쟁은 아시아 소비재 주식에 호재”라며 “투자자들이 필수적인 소비를 충족하는 기업으로 피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슈퍼마켓 체인인 용후이슈퍼스토어 주가는 최근 한 달간 15% 올랐다. 미국에선 코카콜라와 월마트 주가가 한 달 동안 각각 6.3%, 8.4% 상승하며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