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정권 검열로 대본 수정 과정 백미
1960년대 후반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분과의 유덕한 실장은 정권으로부터 비장한 명령을 받는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공연이어야 한다”는 게 ‘각하’의 지시다. 당황한 유 실장은 일단 유명 연출가 김영웅부터 섭외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뮤지컬이란 이름조차 낯설었던 시대에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 만들어진 과정을 유쾌한 상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실제로 국내 최초의 뮤지컬 단체인 ‘예그린악단’의 맥을 이어 온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뮤지컬로, 극단의 시작을 재치 있게 돌아보는 ‘셀프 패러디’ 재미도 담겼다.
첫 뮤지컬이 제작되는 과정은 모든 게 ‘좌충우돌’이다. 알고 보니 김영웅은 유명 연출가와 동명이인인 배우 지망생에 불과했다. 작가는 급하게 섭외된 극단 경리가 대충 맡았다. 배우들도 오합지졸이다. 한물간 오페라 가수와 틈만 나면 아기 동자를 찾는 무속인, 어딘가 어설픈 트로트 가수…. 케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출연진들은 합이 참 안 맞는다.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은 각하가 좋아한다는 유명 가수 윤마리. 겨우 섭외에 성공했지만, 대본을 못 외우는 치명적 약점을 가졌다.시작부터 꼬일 대로 꼬인 ‘얼렁뚱땅 극단’의 무모한 도전은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군사 정권의 지시와 검열로 대본이 거듭 수정되는 과정이 백미다. 조금이라도 불온해 보이면 삭제되고, 간접광고(PPL)가 잔뜩 붙는 등 ‘뮤지컬 속 뮤지컬’은 갈수록 산으로 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단원들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난관에 부딪칠수록 예술에 대한 진정성을 깨닫고 성장하는 것.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재기발랄한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로 보이는 대목이다.
뮤지컬 제작기를 다룬 ‘메타 뮤지컬’인 만큼 공연예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던진다. “뮤지컬은 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그게 바로 뮤지컬이니까요’), “무대만 있으면 해볼 만해”(‘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등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뮤지컬 팬이라면 중간에 등장하는 국내외 뮤지컬에서 모티브를 얻은 유명 넘버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15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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