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대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자 외환보유액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외환당국 안팎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한 환율 쏠림이 발생해도 정부의 실탄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개입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3억700만달러 늘어난 4273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보유액은 소폭 증가했지만 5월 말 기준 보유액 순위는 싱가포르에 밀려 세계 12위에서 13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세계 9위 수준을 유지했지만 올해 1월 10위, 2월 12위에 이어 순위가 더 내려갔다.
최근 환율의 높은 변동성을 고려하면 외환보유액을 추가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달러 유동성 부족 등 금융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이 아니라 외환시장 개입 여력을 키우기 위한 ‘실탄 확보’ 측면에서 보유액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율이 34거래일째 달러당 1500원을 웃돌고 있지만 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을 대미 투자에 사용하기로 한 상황에서 보유액을 함부로 헐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보유액이 40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여전한 국내 시장의 불안심리도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선 당국 개입을 경계하지 않고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선 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해야 해 환율 상승을 되레 부추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율이 안정된 뒤 확충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외환보유액 4273억달러…대미투자에 실탄 부족 인식 확산
시장서 당국 개입 경계감 사라져…"보유액 충분"서 당국 기류 변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하루 변동폭도 커지자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푸는 실개입에 나서도 환율이 잠시 주춤할 뿐 이내 상승세로 돌아서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아 당국의 개입 강도가 세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시장에 퍼진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그동안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던 당국의 기류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고개 드는 외환보유액 확충 목소리
3일 한은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15일 이후 34거래일 연속 1500원 위에서 움직였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2009년에도 1500원을 웃돈 것은 14거래일에 불과했다. 하루 환율 변동폭이 10원을 넘나드는 것도 예삿일이다. 이에 외환당국 안팎에서 실탄 부족이 환율 불안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을 대미 투자를 위해 송금하기로 한 만큼 함부로 헐어 시장 개입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를 깰 수도 없다.
반면 환율 변동성이 커져 과거보다 훨씬 많은 달러를 시장에 공급해야 하는 상황은 잦아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올해 1분기 시장 안정을 위해 136억280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2024년 4분기부터 여섯 분기 연속 순매도다. 이 기간 총순매도 규모는 453억5200만달러에 달한다.
지금까지 외환보유액 적정성 논란의 중심은 주로 ‘대외 금융 충격 시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규모인가’였다. 지금은 개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실탄 확보 측면에서 보유액 확충 논의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5000억~6000억달러 선이었다면 시장 참가자의 당국에 대한 경계감 수준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며 “환율이 달러당 1200원대 중후반일 때 보유액을 확충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충분”
반론도 적지 않다. 우선 금융위기 대응 차원에서 현재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이 약 70%인 대만과 비교하면 한국(약 20%)은 보유액 규모가 너무 작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지만, 국민연금 등이 보유한 해외 자산과 막대한 순대외금융자산을 감안하면 실제 달러 동원 능력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영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본부장은 “한국은 순대외자산이 충분한 데다 달러를 사는 주체가 중앙은행, 국부펀드(KIC), 국민연금, 서학개미 등 골고루 나뉘어 있다”며 “국민연금이 없어 중앙은행 홀로 달러 유동성을 관리해야 하는 대만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7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달러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하거나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들이는 것이다. 외평채 발행 한도는 올해 50억달러로 한계가 있다. 결국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환율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
비용도 적지 않다. 지난해 달러 표시 외평채 이자가 약 6000억원에 달했다. 막대한 기금이 주로 유동성이 높은 국채 등에 투자돼야 해 기회비용도 있다. 외화보유액 수익률은 4% 안팎으로 높지 않다.
권 본부장은 “달러 차입시장에선 유동성이 너무 풍부한 상황”이라며 “시장이 안정되면 외환보유액 확충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고환율 고착화가 이어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보유액 확충 시점을 찾기도 힘들 것”이라고 했다.
심성미/남정민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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