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다. 사실 덴마크의 통치(1397∼1944년)는 아이슬란드의 자체적인 결정으로 시작됐다. 작은 섬인 데다 나무가 거의 없어 고기잡이와 교역을 할 배를 만들지 못하다 보니 고립되지 않으려면 대륙에 있는 나라가 필요했다. 바이킹이라는 같은 조상을 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자원만 없는 게 아니었다. 환경은 얼마나 척박한지 달 착륙을 준비하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 표면과 비슷한 이곳을 훈련지로 삼았을 정도다. 상황이 이런데 이들은 왜 더 나은 미래를 원하지 않았을까?
한 사회와 문명이 어떻게 번영하고 몰락하는지를 연구한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이유가 있었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870년쯤인데, 당시 섬은 풍요로웠다. 숲으로 뒤덮인 저지대는 나무들이 크지 않아 개간하기 쉬웠고, 고지대는 풀들이 무성해 목축에 안성맞춤이었다. 토양은 비옥했고,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라 강과 호수, 바닷가엔 어류가 풍부했다.고향에서 했던 것처럼 농사를 짓고 가축을 사육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섬의 풍요로움이 고향 땅과 같지 않다는 걸 안 건 한참 후였다. 이들의 고향 생태계는 회복이 빨랐다. 숲을 불태워도 금방 나무들이 자랐고, 가축들이 먹은 풀 역시 다음 해가 되면 또 자랐다. 이곳은 달랐다. 한번 사라진 숲과 초원은 거의 재생되지 않았다. 토양이 암석의 풍화작용으로 두껍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화산재가 바람에 날려 쌓이는 것 같은 작용으로 이뤄져 두께가 얕아 한번 소실되면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물론 이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재생이 지나칠 정도로 느린 생태계는 이들을 더 깊은 좌절 속으로 몰아넣었다. 무언가를 하면 개선은커녕 더 악화되기만 하니 변화는 긁어 부스럼으로 인식됐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뭘 해도 안 된다는 체념이 무의식에 자리 잡았다. 변화를 탐탁지 않아 하는 보수적 성향에는 이런 깊은 좌절의 역사가 있었다. 20세기 들어 어업으로 완전히 전환한 덕분에 지금은 부국이 됐지만 말이다.
환경은 이렇듯 사람을 만든다.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화는 대체로 두 상황에서 나타난다. 가진 것이 많아 잃을 것도 많을 때와 옛 아이슬란드처럼 지금 가진 것이라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강할 때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2030세대의 보수화는 후자의 경우인데, 이런 경향은 사회에 이롭지 않다. 현재에 머물러 있으려 하는 까닭이다. 젊음에 미래가 없으면 그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게 정치인데, 어디를 둘러봐도 정치가 없다. 정치인은 차고 넘치는데 정치는 없는 묘한 세상이다.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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