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 사망 에티오피아 군인 딸… 73세 센베타씨, 가족 초청에 방한
“아버지 전사로 어머니와 힘든 나날
원망 없어… 당신께 보여주고 싶어”
강원도 파병 100세 가메씨도 동행… 아리랑 읊조리며 “한국 위해 기도”
마미테 훈데 센베타 씨(73·여)가 23일 하얀색 종이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한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 속엔 임신한 여성과 군복을 입은 남자가 손을 잡은 채 엄숙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 사진은 1951년 센베타 씨의 아버지 훈데 센베타 씨가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파병을 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어머니가 센베타 씨를 임신한 지 3개월이 됐을 무렵이다. 사진을 어루만지던 센베타 씨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버지는 전쟁 때 강원도 화천에서 벌어진 한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네요….”
● 마지막 가족사진 꼭 쥔 채 찾은 한국6·25전쟁 75주년을 앞두고 센베타 씨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에티오피아의 작은 마을을 벗어나 해외에 가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30년간 매년 해외 참전용사를 국내로 초청하고 있는 경북 포항 양포교회의 초청으로 아버지가 전사한 나라를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이다. 23일 포항의 한 숙소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비행기를 타는 게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기 위해 싸웠던 나라를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6·25전쟁 당시 22개국에서 약 195만 명(미군 178만 명 포함)이 유엔군으로 파병돼 한국을 도왔다. 에티오피아는 6037명의 지상군을 보냈다. 아프리카 국가 중 지상군을 파병한 것은 에티오피아가 유일했다. 특히 최정예 황실 근위대를 파병했는데, 에티오피아어로 ‘초전박살’을 뜻하는 ‘강뉴(Kagnew) 부대’로 불렸다. 강뉴 부대는 강원도 화천, 철원 등에서 총 253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할 정도로 강인한 부대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다쳤다. 황실 근위대원이었던 센베타 씨의 아버지도 전투 중 사망했다.
이후 센베타 씨와 어머니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 살았다. 어머니는 자녀를 키우기 위해 매일 아침 3400m 산꼭대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서 팔고 식당 부엌일을 병행했다. 센베타 씨는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진흙 바닥의 2평짜리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며 “그러고도 생활이 힘들어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급하게 결혼을 해 네 자녀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삶이 더욱 힘겨워진 것은 1974년 쿠데타로 황제가 암살되고 공산국가가 되면서다. 1991년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동맹군(공산군)에 맞선 반역자로 몰리며 참전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센베타 씨의 어머니는 남편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센베타 씨는 “어머니는 11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한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당신이 지킨 나라를 보여주고 싶다”
이번 방한에는 1952년 강원도로 파병됐던 참전용사 테세마 가메 씨(100)도 동행했다. 기자와 만난 그는 서툰 한국어로 ‘아리랑’ 가사를 조금씩 읊조렸다. 가메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너무나 황폐했고,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매서운 추위에 입이 얼어 말 한마디 하기 힘들었다”면서도 “한국에 있는 동안 들었던 아리랑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방한 일정 동안 이들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 사업을 하는 비영리기구 따뜻한동행 등을 방문했다. 센베타 씨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한국이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곳을 가볼 수 있다면 그가 잠든 곳에 꽃을 놓고 당신이 지킨 나라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전쟁 중에 숨졌지만 한국을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지킨 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에 감사하다”고 했다. 2021년 따뜻한동행으로부터 집수리 지원 사업을 받았던 가메 씨도 “젊은 시절 싸워 지켜낸 나라에서 오히려 나이를 먹고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며 “한국을 위해 평생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포항=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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