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진수(陳壽)가 지은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후한(後漢) 말기 중국은 혼란의 시대로 각 지역의 영웅들이 세력을 다퉜습니다. 한나라 황족인 유비(劉備)도 한(漢) 왕조의 후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천하를 바로잡으려고 했으나 세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습니다. 조조(曹操)와의 싸움에서 패한 유비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로 달아났습니다. 유표는 유비를 직접 교외에 나가 맞이하여 극진하게 대우하고 병력을 증원해줘 신야(新野)에 머물게 했습니다. 유비가 형주에 머문 지 몇 년이 지나 유표가 베푼 연회에 참석했는데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두둑하게 붙은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비의 침통한 모습을 본 유표가 그 까닭을 묻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전에는 늘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볐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吾常身不離鞍 髀肉皆消). 그러나 지금은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았더니 이렇게 살이 다시 붙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곧 늙음이 닥쳐올 텐데, 아직 아무런 공업(功業)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서러울 뿐입니다.” 자기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을 한탄한 것입니다.
● 생각거리: 당시 유비는 이미 40대 후반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의 일이니, 그때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지요. 그러나 유비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천하 통일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후 형주를 떠나 제갈량(諸葛亮)을 등용하고 재기에 성공하여 촉(蜀)나라 황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