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영화 ‘위키드’로 알려진 조나단 베일리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뮤지컬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2027년 여름 런던 바비칸 무대에 오를 작품은 바로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 작곡, 제임스 라파인 대본으로, 점묘법 화가 조르주 쇠라의 세계를 무대에 펼쳐보인다. 1985년 퓰리처상 극본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자 예술 행위 자체에 대한 헌사이다. 이 작품 이후, 손드하임과 라파인은 다시 협업해 또 하나의 대표작 ‘숲속으로(Into the Woods)’를 탄생시킨다.
스티븐 손드하임(1930~2021)은 뮤지컬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국내에서는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스위니 토드(1979)’와 암살자에 대한 뮤지컬 ‘어쌔신(1990)’이 알려져 있다. 뮤지컬 ‘숲속으로’는 1986년 캘리포니아에서 초연 후 다음 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영국 웨스트엔드에는 1990년 소개됐고, 2014년에는 디즈니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긴 준비 기간 끝에 2025년 12월 런던 브리지 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번 프로덕션은 이 작품이 왜 지금 다시 손드하임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삶은 계속된다, 소원을 이룬 후에도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말 그 이후에도 행복했을까. 뮤지컬 ‘숲속으로’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소원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아니라 소원을 이룬 이후의 삶을 다룬다. 무대에는 내레이터가 등장해 여느 동화처럼 “옛날 옛적에”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화 속 인물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는 신데렐라,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잭과 그의 어머니, 할머니에게 먹을 걸 가져다드리는 빨간 망토. 처음 보는 캐릭터는 라푼젤의 오빠로 설정된 제빵사와 그의 아내이다. 이 인물들은 숲속에서 촘촘히 연결된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가고 싶고, 잭은 소를 팔아야 하고, 빵집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다. 빵집에 들이닥친 마녀는 제빵사의 가문에 내려진 저주를 풀기 위해 자정까지 네 가지 물건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눈처럼 하얀 소, 옥수수수염 같은 노란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망토, 순금 같은 신발. 빵집 부부는 이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인물들은 저마다의 필요를 안고 모두 숲으로 향한다. 1막 끝에서, 소원은 이루어진다.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고, 빵집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며, 내레이터는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숲속으로’의 진정한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2막이 시작된다. 잭이 저지른 일로 남편을 잃은 거인의 아내가 인간 세계로 내려오고, 그녀가 내딛는 한 걸음마다 세상은 무너진다. 소원을 이룬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에 취했던 이들은 비난할 대상을 찾아 서로를 탓하며 잘못을 따진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제빵사는 막상 자신의 품에 안긴 아기의 울음에 당황하고, “조금 더 크면 돌보겠다”며 책임을 미룬다. 인물들은 하나둘 후회한다. 무도회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거인에게서 훔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길에서 벗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이다.
이 작품은 아무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과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개인의 욕망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책임은 끝내 되돌아온다. 행복한 결말은 없고 삶은 언제나 복잡하다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객석은 내내 호기심과 웃음으로 채워진다. 울창한 숲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빛, 안개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의상과 조명, 영상이 어우러져 강렬한 시각적 세계를 완성한다. 이 모든 것을 끌어가는 것은 섬세하게 짜인 음악이다. 작품의 주제와 감정이 깊이 녹아있는 음악은 12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200개가 넘는 스피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나’로 시작해 ‘우리’로 끝나는 노래
뮤지컬을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좋아하는 배우의 라이브 연기와 노래를 보고,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을 환기하며, 클라이맥스에서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 많은 뮤지컬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만, 손드하임의 작품은 다르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 노래를 먼저 발표해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스티븐 손드하임은 작품 안에서 의미를 완성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가는 음악으로 말하는 작가”라고 믿은 그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생각과 선택, 망설임과 책임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뮤지컬 ‘숲속으로’는 이러한 손드하임의 음악적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손드하임은 작사와 작곡을 병행하며 대사와 음악, 인물의 감정 변화를 하나의 구조로 설계했고, 연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반복되면서 귀에 꽂히는 후렴구 대신 모티브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복잡한 화성으로 엮인다. 캐릭터마다 전혀 다른 음악적 스타일이 주어진다. 말의 억양에 따라 리듬과 박자는 계속 바뀌고, 여러 인물의 노래가 겹쳐 진행되면서 각자의 리듬과 가사는 충돌하듯 공존한다.
이 작품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고음의 폭발이나 반복되는 히트 멜로디가 거의 없다. 스타 배우 한 명이 끌고 가는 구조도 아니다. 모든 인물이 고르게 중요하고 집단의 호흡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등장인물만 해도 20명이 넘고, 음악과 언어, 리듬을 정교하게 맞춰야 한다. 손드하임이 유의어 사전과 어휘집을 뒤적여가며 골라 맞춰놓은 촘촘한 라임과 언어유희는 번역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숲속으로’는 한국에서 상업 무대보다 전공 학과 학생들의 공연으로 자주 오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미국과 영국 무대에 꾸준히 올라가는 이유는 손드하임이 던지는 메시지가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 AI의 발달로 삶이 점점 더 개인화되는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연결된 존재인지를 묻는다. 2막의 ‘혼자가 아니야(No One Is Alone)’은 이 작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다. 큰 시련 앞에서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하면서도, 우리의 선택이 결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숲속으로’에서는 누구도 혼자 연기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서로의 이야기 속에 얽히며 책임을 나누어 짊어진다. 손드하임은 욕망의 결과와 책임, 그리고 공동체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개인과 공동체가 충돌하면서도 공존한다는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생각이다. 연출가 조던 페인(Jordan Fein)과 무대·의상 디자이너 톰 스컷(Tom Scutt)의 말처럼,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소원에서 출발해 결국에는 타인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있기에 가능하지만, ‘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세상. ‘숲속으로’는 ‘나에서 우리로 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런던=정재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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