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3위' 내려앉은 애플, 한방은 없었다…AI 대신 '디자인' 강조 [송영찬의 실밸포커스]

4 days ago 12

입력2025.06.10 08:36 수정2025.06.10 08:36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25' 기조연설 무대에 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25' 기조연설 무대에 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애플이 12년 만에 대대적인 운영체제(OS) 개편을 발표했다. 반투명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도입해 화면에 입체감을 주고 실시간 번역 기능 등을 추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만 시장의 관심이 쏠렸던 인공지능(AI) 관련 대대적인 발표는 없었다. 애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스마트폰 관세 부과 방침에 타격을 받은 데 이어 AI 경쟁에서도 소외되는 모습을 보이며 향후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12년만에 iOS 대대적 개편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25' 에서 애플의 새로운 사용자인터페이스 '리퀴드 글래스'가 소개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25' 에서 애플의 새로운 사용자인터페이스 '리퀴드 글래스'가 소개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연례 개발자 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 2025’를 열고 새로운 UI ‘리퀴드 글래스’를 공개했다. ‘액체 유리’라는 뜻의 리퀴드 글래스는 이름 그대로 유리와 액체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알림창·아이콘·검색창 등을 반투명으로 흐리게 해 창을 열고도 배경화면이 보이도록 한 게 핵심이다. 리퀴드 글래스는 아이폰·아이패드·맥·비전프로 등 애플의 모든 하드웨어에 동일하게 적용됐다.

애플이 자사 OS의 기본 디자인을 완전히 바꾼 건 2013년 이후 12년만이다. 각기 다른 숫자가 붙던 각 OS 버전의 이름도 통일했다. 오는 가을 출시될 OS부터 ‘iOS18’, ‘아이패드OS18’, ‘워치OS11’, ‘비전OS2’ 등 제각각 붙던 이름을 출시 회계연도에 맞춰 ‘iOS26’와 같이 26으로 통일한다는 계획이다. 애플은 통상 새 회계연도를 시작하는 10월에 새 OS를 출시해왔다.

리퀴드 글래스는 애플이 스마트안경 출시를 염두에 둔 개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테크업계에서는 애플이 이르면 내년 AI 스마트안경을 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구글이 지난달 자사 연례 개발자대회 ‘I/O 2025’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해 개발한 디스플레이가 있는 스마트안경을 공개한 만큼, 이에 대항하기 위해선 새로운 확장현실(XR) 기기에 들어갈 반투명 디자인이 필수적이란 판단에서다.

세부적인 UI도 개선했다. 리퀴드 글래스가 적용된 위젯을 개인 취향에 맞게 화면에 배치할 수 있도록 했고, 화면을 각 기기의 베젤(내부 화면 테두리)까지 확대해 비어있는 공간이 없도록 했다. 그동안 여러 창을 동시에 띄울 수 없었던 아이패드는 앞으로 창을 자유롭게 조절해 여러 창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수석부사장은 “이번 개편은 십여년만에 있는 대대적인 디자인 변화”라며 “리퀴드 글래스는 우리의 모든 플랫폼에 걸쳐 일관성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대적인 개편에도 AI는 빠졌다

사진=AFP

사진=AFP

이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행사에 앞서 “오늘 엄청난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키웠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이 AI 부활을 포기했다”(월스트리트저널)는 탄식이 나왔다. 애플은 지난해 WWDC에서 자체 AI ‘애플 인텔리전스’와 오픈AI와의 협력을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날 애플이 공개한 새 AI 기능들은 삼성전자와 구글 등 경쟁업체가 이미 내놓은 AI 기능을 따라가는 수준에 그쳤다. 통화·메시지 등에 추가한 실시간 번역 기능이나 캡처한 화면에 있는 제품을 AI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페더리기 수석부사장은 음성 비서 ‘시리’의 AI 탑재 버전 출시에 대해 “품질 기준을 넘기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출시 시점을 연중으로 미루기도 했다.

그나마 현지 업계의 주목을 받은 AI 기능은 ‘파운데이션 모델 프레임워크’였다. 파운데이션 모델 프레임워크는 개발자가 애플의 AI 모델을 클라우드 컴퓨팅에 별도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자신의 앱에 접목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예를 들어 미국의 트레킹 지도 앱 ‘올트레일’에선 올트레일이 별도로 AI를 탑재하지 않아도 사용자들이 “오랜 운전 끝에 가족들과 할만한 트레킹 코스를 소개해줘”라고 말하면 애플 인텔리전스가 알아서 올트레일에서 알맞은 트레킹 코스를 제공해주는 식이다. 또 지난해 발표한 오픈AI와의 협력을 통해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이미지 생성 앱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를 내놓기도 했다.

부족한 AI 발표에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1.21% 떨어진 201.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행사가 시작된 오후 1시(미 동부시간 기준) 이후엔 주가가 2%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애플 주가가 지난 한 달 간 3.26% 오르는 데 그쳐 같은기간 나스닥 평균 상승률(8.93%)의 절반에도 못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뼈아프다. 오랜 시간 미국 기업 시가총액 1위를 유지했던 애플은 지난 2일 마이크로소프트(MS), 14일 엔비디아에 추월당해 현재 3위로 추락한 상태다.

이번 개편이 최근 둔화하고 있는 아이폰 매출을 끌어올리기에도 역부족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애플 전체 매출의 49.1%를 차지하는 아이폰의 지난 1분기 매출은 468억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32.3% 감소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 생산 스마트폰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애플 전문가로 꼽히는 마크 거먼 블룸버그통신 기자는 이날 애플의 발표에 대해 “애플은 사실상 AI 갭이어(안식년)을 보내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토머스 허슨 포레스터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새롭고 멋진 기능이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용 경험에 근본적인 경험을 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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