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커지니 판 치는 사기…가상자산 규제 필요한 이유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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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커지니 판 치는 사기…가상자산 규제 필요한 이유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2008년 8월 18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단어를 사용하는 'bitcoin . org'라는 도메인이 처음으로 인터넷에 등록됐다. 그 당시 저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이 도메인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 이 도메인이 세상을 어떻게 뒤집어 놓을지 짐작조차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2008년 11월 1일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위 도메인을 통해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세상에 공개했고, 2009년 1월 개념조차 생소했던 비트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비트코인은 개당 단돈 10센트에 공개 시장에서 처음 거래를 시작하게 된다.

그로부터 15년 후 비트코인으로 시작한 가상 자산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상식을 완전히 바꿔 놨다. 17세기 유럽 전역을 강타한 네덜란드 튤립 파동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투기 광풍으로 끝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젠 가상 자산을 알지 못하고선 세계 경제와 투자 시장을 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0센트짜리 비트코인, 104조 시장 키웠다

먼 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올해 공개한 보고 자료에 의하면 작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가상 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은 104조원이다. 하루 평균 거래 금액은 17조 2000억원으로 15조 3000억원인 자본시장(코스피, 코스닥 합계)의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투자자 수도 1825만명에 이르러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상 자산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대표적인 투자 시장이 됐다.

구분(2024년 12월 기준) 자본시장(코스피, 코스닥 합계) 가상 자산 시장(5대 거래소 합계)
시가총액 약 2298조원 약 104조원
하루 평균 거래금액 약 15조3000억원 약 17조2000억원

이런 흐름에 따라 가상 자산 투자자들을 기존 자본 시장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지난해 7월 19일 시행됐다. 뒤이어 가상 자산의 발행, 공시, 상장, 유통 등을 규제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도 곧 발의돼 무난히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은 디지털 자산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함과 동시에 디지털 자산이 이젠 자본 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는 점을 전제로 발행부터 상장, 유통 등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해 공적 규제 대상으로 편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장 커지니 판 치는 사기…가상자산 규제 필요한 이유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가상 자산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많은 시행착오와 진통을 겪었다.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가상 자산으로 인한 피해와 불투명한 상장 및 폐지에 따른 논란, 일확천금을 꿈꾸는 '묻지마 투자'로 인한 젊은 세대의 빈부격차 등 가상 자산 시장이 성장하고 정착하기까지 지출된 사회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시장의 자율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이제라도 가상 자산 시장을 공적 규제 영역으로 편입하려는 입법적 움직임은 환영할 만하다.

그동안 명확한 근거와 일관성 없이 거래소의 일방적 재량으로 이뤄지는 상장과 상장 폐지에 관해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가상 자산을 거래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장 가격에 따라 활발한 거래가 가능하게 하려면 거래소 상장이 필수적이다.

스캠코인 등 피해…공적 규제 필요성 커져

그런데 상장 절차가 엄격하고 명백한 기준을 따르지 않다 보니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스캠(사기) 코인'을 발행한 업자들이 여러 위법한 방법을 동원해 코인을 상장시킨 뒤 보유하던 코인을 대량 처분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경우들이 생겨났다. 거래소가 명확한 기준 없이 이미 상장돼 거래되던 가상 자산의 상장을 폐지하면서 해당 코인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경우들도 종종 발생했다.

상장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선 거래소의 재량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번 상장돼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가상 자산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와 법률관계가 형성되게 된다. 따라서 일단 상장이 되면 그때부터 그 가상 자산은 공적 영역에 편입됐다고 봐야 하고, 이를 폐지하기 위해선 공적 규제 기관의 객관적인 심사를 거치거나 관계 법령에서 명백하고 객관적으로 규정한 상장 폐지 요건을 충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장 커지니 판 치는 사기…가상자산 규제 필요한 이유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일관되지 않고 불분명한 기준에 의한 거래소의 상장 폐지 결정으로 많은 투자자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최근에는 국내 코인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장 코인' 위믹스마저 해킹 후 조치가 미흡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상장 폐지 결정이 내려져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가상 자산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한 과거엔 문제가 발생해도 내부적으로 해결하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고, 법원도 거래소의 재량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변했고, 가상 자산 시장은 더 이상 일부 관심 있는 젊은 세대만의 시장이 아니라 국가적인 투자 시장이 돼 공적인 규제가 필요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비록 늦은 감은 있더라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한 가상 자산 시장의 공적 규제 움직임은 나름 큰 의미가 있다. 자타공인 전 세계 자본 시장의 최선봉에 있는 미국 역시 20세기 초까지는 주식 거래를 주 단위로 개별적 관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을 겪고 난 1933년 증권법을 제정하며 주식 시장을 공적 규제 영역으로 편입했다. 국내 가상 자산 시장 역시 시장의 자율성과 공적 규제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판사로 임관하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등 법원 주요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LL.M)에서 미국회사법을 공부하였고, 의료인 출신이면서 부장판사 경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변호사로서, 의료인과 법관 출신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법무법인 세종에서 주요 민형사 송무, 기업분쟁, 금융분쟁, 가상자산, 제약·바이오 사건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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