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빗질[이준식의 한시 한수]〈384〉

1 week ago 15

좋아하기에 본래 붓 들기가 어려워, 시 한 편을 천 번 고쳐야 마음이 놓인다.늙은 할미도 갓 비녀 꽂은 처녀인 양, 머리 다 빗기 전엔 남에게 안 내보이네.(愛好由來下筆難, 一詩千改始心安. 阿婆還似初笄女, 頭未梳成不許看.)-‘마음을 달래다(견흥·遣興)’ 원매(袁枚·1716∼1797)잘 쓴 글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거듭 손질한 끝이라 단숨에 나온 듯 보일 뿐이다. 청나라 시인 원매는 시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을 머리단장에 빗댔다. 늙은 여인도 갓 성년이 된 처녀처럼 머리를 다 빗기 전에는 남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완성의 시도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가 어색하고 구절 하나가 흐트러졌다면 아직 단장이 끝나지 않았다. 원매는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이리저리 살피듯 글자를 바꾸고 시구를 가다듬었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다시 매만지고, 그래도 어색하면 처음부터 손을 보았다. 말하자면 그는 시를 혹독하게 앓는 ‘퇴고(推敲) 중독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손질을 거듭한다고 반드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만지다 보면 감정이 메마르거나 표현만 번지르르해질 수도 있다. 원매가 중시한 것은 자신의 성정과 진실한 감흥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마음을 살리되, 그것이 가장 알맞은 언어와 리듬을 얻을 때까지 벼려야 한다는 뜻이다. 퇴고는 감정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덜어 내고 어긋난 표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초고를 마쳤다고 곧바로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다. 한 번 더 읽고, 넘치는 말을 줄이고, 문장의 결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 시도 사람처럼 외출 전에는 머리를 빗어야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