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민간에 다 맡기면 금융위기 올수도"…석학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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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민간에 다 맡기면 금융위기 올수도"…경제학 석학의 경고

"공공 부문이 디지털 화폐를 위한 안전한 인프라를 깔고, 민간 업자들은 앞단의 혁신 서비스를 만드는 식의 분업이 필요합니다. 민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금융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마테오 마지오리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사진)는 지난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아이디어는 흥미롭지만 은행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제약 조건이 많다"고 했다. 준비금이 돼야할 원화 표시 국채 등 안전자산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발행량을 많이 늘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마지오리 교수는 지리경제학 분야 석학으로 경제적 긴장이 커질 때 자본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40세 이하 최고의 금융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피셔 블랙상’, 40세 이하 최고의 유럽 경제학자에게 주는 ‘베르나세르 상’ 등을 받았다. 지난 18~22일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 참석차 방한해 지리경제학, 디지털 화폐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마지오리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최근 갈등을 "'지리경제학'이 작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미국은 금융시스템과 첨단 반도체를 중심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희토류 등 자원을 가지고 대응하는 등 긴장도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중국 모두와 밀접하게 연결돼 압박을 이중으로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해법으로 "첨단 제조업과 특수 소재에서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한국 기업이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외 제3의 수출처를 찾을 필요도 있다고 봤다. 마지오리 교수는 "더 중립적인 국가들과 생산 및 소싱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냉전 기간 제3국의 사례를 보면 이 같은 대응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음은 마지오리 교수와의 일문일답.

"스테이블코인, 민간에 다 맡기면 금융위기 올수도"…경제학 석학의 경고

▶지리경제학이 왜 이렇게 중요한 주제가 됐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냉전 이후 세대에서는 처음 보는 수준으로 강력합니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수출 통제를 하고 있고, SWIFT라는 결제 시스템을 통해 러시아를 제재했습니다. 중국은 희토류 등의 공급 중단을 하겠다며 위협하고 있죠. 과거에도 미국과 중국은 여러 지역에 압력을 행사했지만 지금 더 강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학적 분석 도구가 발전한 영향도 있습니다. 1950년대에도 이 주제는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를 다룰 수 있고, 이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도구인가요?
"지리경제학과 관련한 이론이 발전했습니다. 최근 1년 반 동안 저희는 무엇을, 왜 측정해야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국가간 무역 데이터를 사용해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갈등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를 이론적으로 정립했습니다. 인공지능(AI) 활용도도 높아졌습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문서를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통해 자동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제재'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제재의 내용까지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를 언급하셨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지리경제학적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산업인가요?
"반도체, 특히 첨단 반도체가 그렇습니다. 상대국에 압박을 가하려고 하면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분야'를 찾을 것입니다. 대체하기 어려운 강점을 갖고 있는 산업 말이죠. AI에 쓰이는 최첨단 반도체 칩과 토스터기에 들어가는 범용 칩은 전혀 다른 제품입니다. 우리가 최고급 AI 칩을 사용하지 못하고, 품질이 낮은 대체 칩을 써야한다면 손실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반도체 공급망은 소수 국가에 집중돼있습니다. 미국은 설계(디자인), 대만은 제조에서 강점을 갖고 있고, 한국은 두 영역을 모두 잘합니다. 문제는 한국 기업 중 일부가 중국 현지에 제조공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미중갈등 속에 복잡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미국은 칩4 동맹에 한국이 참여해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반면 중국은 제재를 우회해 수출을 해주길 원하죠. 데이터에서도 이런 흔적이 나타납니다. "

▶한국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와 긴밀한 무역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양측 모두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또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주한미군의 존재도 특별합니다. 미군의 존재가 한국의 경제와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기술적으로 더 발전해야 합니다. 최첨단 기술력을 유지해야 지리경제학적 협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 자체는 누가 대통령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술력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미중 갈등의 양상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무기는 금융 인프라입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 결제망과 증권 결제 시스템을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자금 이동의 상당 부분이 미국의 인프라에 의존돼있습니다. 중국은 이런 미국 중심 결제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결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죠. 미국은 이를 다소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를 받은 나라들이 중국의 금융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의 지리경제학적 영향력은 크게 축소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어떤가요?
"중국의 힘은 주로 제조업에서 나오지만 첨단 제조업이 아닌 경우 그 자체로는 큰 압박을 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원자재인 희토류는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희토류 관련 제품의 수출 허가를 제한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미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강력한 카드입니다. 하지만 금융 인프라를 무기화하는 미국의 전략과 비교하면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은 예측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다만 관세를 실제로 부과하기보다는 위협을 지렛대로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관세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경제이고, 미국과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분야에선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수입하고 있죠. 미국은 상대국이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투자금이 많이 들어오면 무역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균형이 복잡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우선 개념별로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가상자산(crypto)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제수단이나 가치저장 수단으로 부적합합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개념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은행 면허 없이 은행처럼 운영하는 경우 금융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은행은 금융안정을 위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도 같은 원칙을 따라야합니다."

▶스테이블코인에 반대하는 것은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민간 혁신을 막아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공공부문이 기본 인프라를 만들고, 민간 기업들이 그 위에서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중앙은행이 결제용 모바일 앱을 디자인할 필요는 없어요. 인프라를 제공하면 민간에서 혁신적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공공부문이 인프라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민간이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게 됩니다. 이는 금융안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제약 조건이 많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해당 통화 기반의 안전자산이 충분히 있어야합니다. 미국은 국채 등 달러표시 자산이 충분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부채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아서 애초에 발행 가능한 원화 기반 안전자산의 양이 제한적입니다."

▶AI가 경제학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나요?
"엄청나게 바뀌고 있습니다. 연구 질문의 범위가 확장되고, 방법론 자체가 변화합니다. 과거엔 불가능했던 대규모 데이터분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AI가 경제학자를 대체하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보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요. 고숙련 경제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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