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공연장 설립'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에 모두 '아레나 공연장 설립'이 포함됐다. 한국은 'K팝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오랜 시간 공연장 기근에 시달려왔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실적이고 신속한 추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이 발표한 '제21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정책공약집'에 따르면 이 후보는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를 목표로 내걸며 K팝의 세계 진출 지원을 확대하고, 창작공간과 비용 등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류 문화 인프라 확대를 위해 △5만석 규모의 대형 복합 아레나형 공연장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국민의힘은 '국민과 함께 새롭게 대한민국' 공약집을 통해 △5대 메가시티에 2~3만석 규모 아레나 공연장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해외 및 국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별 특화 관광상품 및 숙박과 연계해 일자리를 창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규모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아레나·스타디움급 공연장 부재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공연 수요가 폭발하면서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어 약 5만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잔디 보호 문제로 대관이 까다로운 서울월드컵경기장과 프로야구 경기 일정에 영향을 받는 고척스카이돔(고척돔) 등 제한적인 환경이 지속되면서 업계의 한숨이 길어졌다.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KSPO돔(체조경기장)으로 일제히 대관이 몰리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현재 가장 핫한 팝스타로 언급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공연할 곳이 없어 한국을 패싱한다는 말도 화제가 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에라스 투어' 일환으로 지난해 2월 일본 도쿄돔에서 4일, 3월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6일이나 공연했지만, 한국은 찾지 않았다.
그가 공연하기 위해서는 최소 5만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돔(5만석 안팎) 혹은 스타디움(7만명 이상)급 공연장이 필요하다. 일본 도쿄돔,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 모두 5만여명이 들어가는 장소다. 공연하는 지역의 경제까지 살아나게 만든다는 의미로 '스위프트 노믹스'라는 말까지 만든 파급력을 생각하면 '한국 패싱'은 아주 아쉬운 대목이다.
스타디움급 규모의 가수들까지 KSPO돔(1만5000석), 고척돔(2만5000석)에서 여러 회차로 나눠 공연하는 이른바 '쪼개기 콘서트'를 하면서 국내 대관은 그야말로 '포화' 상태다.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인천문학경기장·고양종합운동장 등이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접근성에 따른 스태프 비용 증가 문제로 서울 시내에 있는 공연장이 우선시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공연 회차가 많지 않은 내한 가수의 경우는 여러 회차에 걸쳐 관객을 동원하는 국내 가수와 비교해 대관 경쟁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잠실주경기장은 내년 말 리모델링이 끝나지만, 기존 잠실야구장 자리에 돔구장을 짓는 2031년까지 5개 시즌 동안 LG·두산의 대체 홈구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현재 고척돔처럼 프로야구 시즌에는 공연 개최가 사실상 불가, 경기 일정을 피해 대관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연장 설립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2만석 이상의 공연 전문 아레나를 설립했을 때의 실질적인 가동률을 고민해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CJ라이브시티의 설립이 무산되고, 서울아레나의 착공 및 준공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미뤄지면서 이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산업 핵심 과제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접근성이 조금 떨어진다거나, 예산을 더 집행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는 곳일지라도 일단 입찰을 따내야 하는 실정"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주최 측에서 범위를 넓혀 새로운 장소를 찾는 등 자체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왔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음반·공연·매니지먼트 전문 기업 440여곳 이상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는 각 대선 후보들이 국회의사당의 세종시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을 토대로 "국회의사당 부지에 세계적인 수준의 K팝 아레나를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과 그 주변 부지에 3만석 규모의 대형 실내 공연장을 세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제협은 "잠실주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고척돔, KSPO돔 등은 K팝 공연 개최를 위해 일부 활용되고 있으나, 각각의 시설은 리모델링·잔디 훼손 문제·노후화·대관 절차 등으로 인한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런 현실은 국내 대형 공연 일정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나아가 국내 공연 시장의 경쟁력 저하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인프라 확충 및 운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K팝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반영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