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삽시도 워케이션
노트북 옆에는 바다가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둘레길이 있으며 퇴근 후 네온사인 대신 붉은 낙조가 있다. 워케이션은 영어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결합한 합성어다. 워케이션에서 일과 쉼은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인구 소멸을 겪고 있는 지방도시들에 워케이션은 ‘체류형 관광’의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숨어 있기 좋은 섬’ 삽시도에서 워케이션을 체험해 보았다.● 물빛 아름다운 삽시도
보령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페리호는 50분 만에 삽시도 술뚱선착장에 도착했다. 인근에 있는 원산도가 보령해저터널로 연결되고, 해상 교량으로 안면도와 이어지는 등 섬이 육지로 변하고 있지만 삽시도는 태고적 그대로 외딴 섬으로 남아 있다. 갯벌에는 드문드문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만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지금 삽시도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요. 옥빛을 계속 닮아가고 있거든요.”삽시도에서 숙박을 하게 된 펜션의 주인 김태연 씨는 물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삽시도는 서해인데도 거무튀튀한 펄 같은 물색이 아니다. 고려청자의 비췻빛, 옥구슬 빛처럼 우아한 물색이다.


자전거 타기와 치유의 숲길 산책 말고도 할 게 많다. 갯벌로 나가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바지락을 캐고, 낙지와 박하지(돌게)를 잡고, 방파제 낚시를 즐긴다. 배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물 체험이다. 선장님이 미리 설치해 놓은 길이 300m짜리 그물을 기계로 끌어올리자 간재미와 광어, 낙지, 꽃게가 줄줄이 올라왔다. 이날 저녁상에는 시원한 바지락국물과 함께 간재미와 광어회가 놓여 있었다. 역시 내가 직접 잡은, 수렵채취의 결과물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
워케이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여행친화형 근무제(워케이션)’ 사업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부산, 강릉 같은 유명 관광지도 인기를 끌었지만 부여 공주 태안 보령을 비롯해 다양한 관광자원을 가진 충남도 워케이션 명소로 떠올랐다. 젊은 층은 보령과 태안 같은 해안지역을 선호하고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공주와 부여를 많이 찾았다. 지난해 ‘워케이션 충남’ 사업 참가자는 2024년 1540명에서 2649명으로 늘어 70% 이상 증가했다.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인근에 약 40억 원을 들여 워케이션 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공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할 수 있는 거점형 시설이다. 그런데 보령에서 가장 흥미로운 워케이션 공간이 삽시도에 있다. 삽시도 거주 인구는 약 240명. 펜션도 40개가 조금 넘는다. 규모가 작고 조용하지만, 워케이션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숨어 있기 좋은 섬이기 때문이다.
임미자 삽시도 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은 “처음에는 많은 분이 섬이라서 불편하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업무와 체험 시설, 호텔식 침구류와 침대, 차량 운행 같은 서비스를 정비하면서 대기업 직장인부터 공무원, 프리랜서 등 다양한 신청자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삽시도 워케이션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2박 3일 동안 숙박과 아침식사, 갯벌 체험, 자전거 대여, 섬내 교통 편의까지 제공받는데 단돈 3만 원이면 된다. 보통 바닷가 펜션이 하루 투숙 비용이 수십만 원대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워케이션에 참가하려면 4대 보험 가입자와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7, 8월 성수기와 주말은 워케이션 신청을 받지 않는다. 비수기와 평일에 체류형 관광객을 늘리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1인당 연 2회 신청할 수 있고 6박 7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한다.
● 바닷가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
삽시도 바다는 노을 물드는 저녁이면 갈매기가 낮게 날고, 물빛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파도가 물러간 자리에는 떠내려온 유목(流木)과 조개껍데기, 밧줄, 튜브 조각, 스티로폼, 바다유리(깨진 음료수병 같은 유리 조각이 풍화돼 돌 같이 된 것) 같은 해양쓰레기도 함께 남는다.삽시도 워케이션 센터에서는 해양쓰레기를 주워 오면 갯벌 체험비 20%를 할인해준다. 그리고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를 이용해 키링이나 액자 만들기 같은 공예 체험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바다유리다. 수십 년 전 해안가에 무심코 버린 소주병, 사이다병, 맥주병 등이 깨져 생긴 유리 조각이 파도에 휩쓸리며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져 재탄생한 크리스털 같은 조각이다.

● 고대도? GOD愛島!
보령 앞바다에는 삽시도 외에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같은 섬들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삽시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고대도는 ‘God愛島’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가 최초로 들어온 섬이기 때문이다. 1832년 7월 25일, 독일 출신 선교사 칼 귀츨라프(1803~1851)가 영국 동인도회사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號)를 타고 고대도 안항(安港)에 정박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한 것보다 53년이나 빨랐다.
고대도선교센터 정수목 목사는 “귀츨라프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했고, 한글의 가치를 세계에 소개했으며, 처음으로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귀츨라프 선교사가 1개월 동안 섬에 머물면서 남긴 업적은 놀라울 정도다. 그는 고대도 주민들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성경책을 나눠주었고, 감기환자들에게 약을 주며 서양 근대 의술을 소개했다. 또한 서양식 감자 파종법을 가르쳐주고, 국내 최초로 감자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이다. 귀츨라프는 그 짧은 기간 한글을 배웠는데, 그의 친필 한글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글·사진 보령=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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