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 수영장되는 상상을 그림으로… 일상서 소재 순간 포착”

2 hours ago 2

데뷔 10년 얼굴없는 작가 ‘안녕달’
“첫작품 ‘수박 수영장’ 참 고마운 책… 나와 내가 그린 그림책은 다른 존재
책속 캐릭터에 더 집중해 주셨으면… 올 여름 ‘복숭아 책’ 내 사은품으로”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 창비 제공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 창비 제공

안녕달 작가는 “작가보다는 작품 자체만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며 얼굴이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 왔다. 국내에 탄탄한 고정 팬덤을 형성한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창비 제공

안녕달 작가는 “작가보다는 작품 자체만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며 얼굴이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 왔다. 국내에 탄탄한 고정 팬덤을 형성한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창비 제공

무더운 여름, 수박씨가 빠진 자리에 고인 물이 시원한 수영장이 되는 상상에서 출발한 그림책 ‘수박 수영장’.

현재까지 88쇄, 약 32만 부가 팔렸고 뮤지컬로도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끈 이 그림책은 2015년 ‘무명의 신인’이 낸 첫 책이었다. 말 그대로 얼굴도 이름도 없이 필명으로만 활동하는 안녕달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이례적인 출세작 이후로도 ‘할머니의 여름휴가’ ‘당근 유치원’ 등 펴내는 책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책들의 전체 누적 판매는 국내에서만 약 81만 부에 이른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아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올라선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별에게’. 창비 제공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별에게’. 창비 제공

―‘수박 수영장’으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가요.

“첫 책이라 오랜만에 꺼내 들 때면 저도 기분이 묘해요. 투고했을 당시 이 책이 나온다면 간간이 새 그림책을 내거나 일러스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됐어요. 덕분에 지금은 그림책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참 고마운 책이죠.”

데뷔와 동시에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실은 작가는 오랫동안 “거의 반백수 느낌”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수년간 그림책 공모전 등에 응모하거나 투고했으나 낙방과 거절이 거듭됐다. ‘안녕달’이란 이름도 “예쁜 이름이면 많이들 써주려나” 싶어 급히 예쁜 단어만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었을까요.“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디자인을 잘 못했어요. 서점에 디자인 서적을 보러 갔다가 너무 어려워서 쉬워 보이는 그림책만 한 권씩 사 왔어요. 그러다 그림책 그리는 일을 하게 됐네요. 그림책은 쉬워서 좋아요. 누구나 10분 정도면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책은 쉽게 다시 또 꺼내 볼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에요.”

수박이 수영장이 되고(‘수박 수영장’), 솜이불 아랫목이 찜질방이 되는 것(‘겨울 이불’)처럼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에서 떠오른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는 “가끔 운 좋게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따뜻한 유머, 뭉클한 이야기를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마감할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편”이라고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우당탕 일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떠난 낯선 휴가지에서 아무거나 먹다가 배탈이 난 상태”라고 했다.

―그림책 작가로 가장 보람 있었던 때가 있었다면….

“두 번째 책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책으로 나왔을 때 어느 분이 자신의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메일을 주셨어요. ‘내일은 할머니 병문안을 가야겠어요’라고요. 오랜만에 손주를 보고 좋아할 할머니 표정을 떠올리며 엄청 행복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안녕달 작가는 “조금 더 소소한 기쁨도 있다”며 “지금까지 낸 책을 모아 꽂아 놨는데 벽에 맞닿은 책장 한 칸에 10권이 넘는, 다양한 높이와 깊이의 책들이 있다. 가끔 벽에 기대서 그 책들을 가만히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책에 저의 어떤 부분이 묻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저와 제가 그린 책들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책을 보시는 분들이 저를 떠올리기보다 책 속 이야기, 캐릭터들에 더 집중해 주셨으면 하거든요.”

작가는 MBTI를 묻는 질문에조차 답을 아꼈지만 책 속에 단서가 묻어 있긴 하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최근 펴낸 신작 ‘별에게’는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해변에서 주워 온 작은 별들을 손주 손에 건네주는 장면”이 떠오르며 착안한 책. 이 아이디어가 1980, 90년대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는 할머니들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연령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올여름엔 ‘수박 수영장’ 10주년을 기념해 작은 ‘복숭아 책’을 낸다고 한다. 그는 “작은 독립출판물처럼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예전의 그처럼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을 향한 조언을 부탁하자 “위로, 격려 이런 건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도 살면서 이뤄진 소망이 있고 그러지 못한 것들이 있죠. 이뤄지든, 이뤄지지 못하든 그 기억들이 제 삶 어딘가에 소중히 남아 남은 삶을 비춰 주길 바라고 있어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