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장애는 ‘뇌 질환’… 뇌 회로 이해하면 맞춤치료 가능할 것[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22 hours ago 3

수면 장애의 진단과 치료
‘잠은 보약’ 건강에 매우 중요… 잘때 뇌 안 노폐물 청소 이뤄져
노화, 스트레스로 뇌 변화되면… 잠 유지 기능 약화돼 수면 질↓
뇌 활동 파악해야 정확히 진단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시험 전날 걱정으로 잠을 설친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한번쯤은 기억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을 굉장히 잘 자는 편이었다. 언제 어디에다 머리를 두어도 베개에 대면 바로 잠이 오곤 했다. 그래서 머리를 대고 눈만 감으면 오는 잠을 사람들이 왜 못 자는지 이해가 안 됐다. 수험생일 당시에도 원하건 아니건 잠을 적게 자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잠을 잘 잤다. 사실 밤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더 잘 보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잠을 줄이기가 힘들었다.》

나중에 뇌 과학자가 된 뒤에야 수험생에게도 ‘4당 5락’(하루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 아닌 ‘8당 7락’이 오히려 맞다고 생각될 정도로 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잠을 잘 잘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축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건이 벌어지자 나의 얘기도 달라졌다. 장기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자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었고, 운동도 안 하고 엄청난 양의 음식을 섭취해도 살이 쭉쭉 빠지는 게 아닌가?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 잠은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잠을 자는 동안 뇌는 뇌 안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수면 장애는 직접적으로 뇌를 더 상하게 할 수 있다.

불면증은 우리가 흔히 겪는, 지나치게 일찍 잠에서 깨거나, 자다 깨어 잠에 들지 않거나, 야간 수면시간 부족, 잠을 자지만 피로감이 느껴지는 수면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불면증 외에도 수면 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다. ‘수면 무호흡증’은 수면 중 상기도의 폐쇄로 인해 호흡이 멈추거나 감소해 잠에서 자주 깨는 장애를 일컫고, ‘수면마비’는 수면 중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가위 눌림을 말한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렘수면을 하는 동안 꿈을 꾸면서 꿈속의 행동을 현실로 표출하는 장애를 말한다. ‘기면증’은 낮에 지나치게 졸리거나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잠드는 증상, 그리고 큰 감정 변화 같은 것에 의해 갑자기 근육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는 장애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하지 불안 증후군’은 다리에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과 함께 다리를 움직이고 싶어지는 강한 욕구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하는 장애다.

그렇다면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당연히 피곤해서 누우면 으레 잠이 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잠에 들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 회로가 우리가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활동을 하면서 잠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유지해야만 잠에 드는 게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면 중 뇌 활동이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다고 한다. 노화, 스트레스 등으로 일어나는 뇌의 변화로 인해 수면 유지와 관련된 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수면 장애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뇌 질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수면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뇌 기능의 변화를 알아봐야 하므로, 병원에서 수면 다원검사를 하면 된다. 수면 다원검사는 말 그대로 수면 장애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지표를 함께 측정하는 것인데, 뇌의 활동에 관한 뇌파 검사가 반드시 포함된다. 이 밖에도 심전도, 근전도, 그리고 안구의 움직임을 보는 안전도 검사와 비디오 촬영 등이 수반된다.

수면을 취하는 동안 뇌파와 심박, 근육 긴장도, 눈의 움직임, 호흡 등을 측정하면 수면의 단계를 구분하고, 그 시간과 비율을 측정해 수면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수면은 크게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과 비(非)렘수면으로 구분된다. 렘은 얕은 수면을 하며 눈을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비렘수면은 뇌파의 모양에 따라서 1∼4단계로 구분된다. 건강한 젊은 성인은 비렘수면이 전체 수면의 75∼90%를, 렘수면이 10∼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면 장애를 치료하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의 어느 부분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수면의 구성이 달라졌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뇌 회로의 동작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당황스럽거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과 걱정이 있는 상황에서도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해 보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실제로 자고 나면 자기 전에는 너무나 심각하게 느꼈던 일들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뇌는 하루 종일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피로가 누적되는데, 잠을 자는 동안 많은 부분 ‘청소’가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토록 중요한 잠을 잘 자지 못하면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어느 질병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뇌 회로에 대한 이해는 각 개인이 왜 잠을 못 자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서는 수면의 질을 관장하는 뇌 기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꿀잠’을 잘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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