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기침에 큰병원 갔는데...종격동 림프종 확진
허용된 외출 단 하루, 경남 고사장까지 왕복 불가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교육부에 협조 요청
본관 21층 특실에 마련된 별도공간서 응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두고 혈액암 진단을 받은 수험생이 서울성모병원이 별도로 마련한 병실에서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서울성모병원은 본관 21층 특실에서 한 수험생이 수능시험에 응시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가은이(가명)는 힘겨운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면서도 “영어나 스페인어 같은 외국어 교육 특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고, 대학에 간다면 축제에서 열리는 공연을 꼭 보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택한 가은이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언젠가부터 기침이 계속 나왔지만 감기와 과로 탓으로 여겼는데, 동네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영상검사 결과 좌우 양쪽 폐 사이의 공간인 종격동에 종양이 보였다.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좀 더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시행했고, ‘종격동 림프종’으로 최종 진단됐다. 림프종은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혈액종양으로, 림프계 조직에 있는 림프구가 악성으로 변화한 것을 말한다.
면역력이 현저히 약해진 상태여서 의료진이 허락할 수 있는 외출은 단 하루뿐이었다. 본가가 경상남도인 가은이가 하루만에 지역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병원으로 복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은이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윤선희 병동 UM(unit manager) 간호사는 해결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윤 간호사는 “얼마 전 만난 가은이 보호자가 ‘시험을 못 보면 딸이 희망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호소한 게 마음에 계속 남았다”며 “가은이가 수능을 봐야 대학 진학의 꿈을 놓지 않을 수 있고, 또 앞으로 있을 항암치료 경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협조를 구한 서울성모병원은 가은이를 위한 시험장을 준비했다. 교육청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는 독립 병실 공간과 시험 감독관들이 대기할 수 있는 회의실, 휴게실 등을 마련했다. 또 가은이가 수능 시험 후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일정도 조절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신체적으로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수능 전까진 가은이가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썼다.
가은이의 주치의인 민기준 혈액내과 교수는 “건강한 수험생도 수능시험이 큰 스트레스인데, 어려운 상황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시험에 도전하는 가은이를 응원한다”며 “시험 후 치료도 잘 마쳐 원하는 대학의 건강한 새내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은이 보호자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신경 써주신 의료진과 병원 덕분에 수능 시험을 볼 수 있게 돼 감사드린다”며 “수녀님들이 오셔서 기도도 해주신 만큼 치료 후 건강하게 퇴원해 원하는 학교에도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