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미루는 타입이야. 이런 내가 기초 미적분학 강의를 2주에 격파할 수 있도록 세부 계획을 짜줘.”
오픈AI가 미국 주요 대학가 곳곳에 내건 옥외 광고 문구다. 대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작성했을 법한 챗GPT용 프롬프트(명령어)를 광고로 만들어 잠재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 대학생 앰배서더를 운영하는 등 대학생 이용자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인공지능(AI)산업의 핵심으로 ‘대학 시장’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 AI’ 선점 경쟁
10일 AI 업계에 따르면 클로드 개발사 앤스로픽은 지난 4일 대학 전용 서비스인 ‘클로드 포 에듀케이션’을 출시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영국 런던정경대 등과 협력한 결과물이다. AI가 정답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학생의 사고 확장을 유도하는 ‘러닝 모드’ 기능이 핵심이다. 학생이 질문하면 클로드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같은 질문형 답변으로 학습을 유도하는 식이다. 일종의 대학생 전문 AI 튜터인 셈이다.
다음 날인 5일 오픈AI는 미국과 캐나다 대학생에게 월 20달러(약 3만원)인 챗GPT 플러스 기능을 3개월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앤스로픽의 대학 전용 AI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리아 벨스키 오픈AI 부사장은 “AI 도구를 다뤄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픈AI는 지난해부터 대학 전용 서비스 ‘챗GPT 에듀’를 운영 중이다.
이 같은 경쟁에 대해 미국 테크 매체 더버지는 “대학생이 미래 AI의 핵심 사용자층”이라며 “자사 AI를 교육 현장의 기본 도구로 만들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글은 제미나이 기반의 교육자용 AI, 마이크로소프트(MS)도 MS365 코파일럿에 교육 AI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 AI 강의 통합 나서
국내에선 네이버가 대학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대화형 AI 서비스 클로바X의 20대 사용자 비율은 대학 학기 중인 3~6월, 9~12월에 뚜렷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 준비와 시험 공부 등 대학 생활에 클로바X를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문제 풀이에도 AI를 쓴다. 클로바X의 문제 풀이 기능 사용 순위는 지난해 7월 전체 대화 중 21위에서 12월엔 2위까지 뛰었다.
주요 대학이 AI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는 점도 AI 빅테크들이 대학을 공략하는 이유로 꼽힌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챗GPT를 ‘올해의 교수’로 임명했다. AI 활성화팀이라는 전담 부서도 만들었다. 스탠퍼드대는 학습 가속화센터 내에 AI 전문팀을 운영 중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도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수정해 학생들이 브레인스토밍과 리포트 작성 과정에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다만 결과물에만 출처를 표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는 공대를 중심으로 각 학부가 산발적으로 진행 중인 AI 관련 수업을 통합해 레벨별로 체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여전히 AI 활용률이 떨어지고 있다. 오예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챗GPT를 쓰는 게 학문적 정직성을 저해한다는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토론 과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며 “고등교육 선두주자인 미국에선 이미 대학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