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이 돌아왔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후 전 세계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은 그는 결혼과 출산을 지나며 7년의 스크린 공백이 있었다. 마침내 영화 '어쩔 수가 없다'로 다시 관객 앞에 선다. 평범한 회사원의 몰락과 생존을 그린 작품에서 그는 흔들림 없는 아내 '미리'로 분해, 깊이와 내공이 한층 무르익은 연기를 펼친다.
'어쩔 수가 없다'는 한순간에 삶이 무너진 가장의 이야기다.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다 이루었다'고 믿었던 직장인 만수(이병헌)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녀를 지켜야 하는 그는 재취업 전쟁에 뛰어들지만, 경쟁은 잔혹하고 선택은 점점 극단으로 향한다.
손예진은 '미리'라는 인물에 대해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아내"라고 정의했다. 이어 "댄스와 테니스 같은 취미를 내려놓고 생계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위기에 대처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구직 활동이 보통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감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미리'의 성격은 배우 손예진이 그간 보여온 연기 스펙트럼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클래식'에서 국민 첫사랑의 상징이 되었던 그는 '비밀은 없다'와 '덕혜옹주'에서 강단 있는 여성상을 선보였고,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연애시대'에서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작품의 밀도를 높였다. 이번 작품에서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이성적인 생존자'라는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구현해낸다.
하지만 손예진은 자신 또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7년 만이라는 소리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로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게 줄어들었다는 뜻이죠. 지금 절감하는 건, 영화가 너무 없다는 겁니다. 제가 최근에 찍은 것도, 앞으로 찍을 예정인 것도 모두 OTT 시리즈예요."
그는 배우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년 넘게 일을 했지만 실직의 경험은 없었습니다. 다만 저희 일이라는 게 정말 조심해야 하는 일이죠. 도덕적, 불법적인 잘못을 저지르면 다음 날 바로 실직이거든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끝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가 던지는 변수가 있습니다. 그게 딱 우리 영화 이야기죠."
손예진은 공백기는 아이와 함께였다. "아이를 돌보며 3년 정도는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어쩔수가없다'를 만나며 생각보다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다행히 이번 작품은 이병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구조여서, 저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었어요."
그는 복귀 시점을 두고 깊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언제, 어떤 작품으로 복귀해야 하느냐는 배우로서 큰 고민이었죠. 몇 년 만에 돌아오는데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마음과 몸을 준비해야 했고, 가정을 돌본 뒤 현장에 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한 이번 작품이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삶의 시각이 바뀌면서 연기에 대한 태도도 변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연기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삶이 바뀌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 속에서 연기도 조금은 달라졌겠죠."
이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국민 첫사랑에서 시작해 이제는 엄마, 싱글맘, 이혼녀까지 다 해봤다. 멜로도, 스릴러도, 시켜만 주면 액션도 하고 싶다"고 웃었다. "육아를 하다 보니 모성에 대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마더' 같은 작품도 좋고, 대중적인 모성극도 매력 있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