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세상만물 각각에 유일한 의미들을 담아 주는 것"

1 week ago 17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부정관사(a/an)를 정관사(the)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에 널린 수많은 사과 중 하나였던 ‘an apple’이 소설 속에서 의미를 얻는 순간, 우리에게 유일하고 중요한 ‘the apple’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소설의 힘입니다.”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 무대에 올랐다. 올해 소설집 <당신이 준 것>과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두 권을 연이어 발표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약 40명이 참석했다. 신승민 시인 겸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문 작가는 먼저 소설집 <당신이 준 것>에 수록된 데뷔작 ‘체이서’에 얽힌 비화를 공개했다. 2010년 네이버 ‘오늘의 문학’으로 선정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과학소설(SF)라는 장르적 특성 탓에 이전 소설집에는 실리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는 “데뷔작을 불태우고 싶어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15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니 나의 시작점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오토픽션(Autofiction)’이다. 자전적 경험과 허구를 결합한 이 장르에 대해 그는 “진실과 거짓을 섞는 행위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우리 삶이 특별한 재료가 없더라도 ‘파인다이닝’ 같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특이한 삶을 살았느냐보다, 내 안의 고유한 방식으로 어떻게 서사화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편 <나이트 트레인>은 20대 청년의 유럽 여행기를 담은 액자식 소설이다. 문 작가는 “삶 속에 여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속에 삶이 있는 것 같다”며 “여행이라는 근사한 그림자 속에 가려진 지루함, 기다림, 허비되는 시간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했다. 세련되고 낭만적인 여행기가 아닌, 그 이면의 쓸쓸함과 그림자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반복’의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되풀이가 나의 유일한 재능”이라고 겸손하게 말한 그는 평범하고 뻔해 보이는 일상을 새롭게 보는 힘이 곧 예술임을 강조했다. 12년 동안 100여 번의 공모전 낙방을 경험하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 역시 “재능이 있다고 착각한 것”과 “현실 감각이 없었던 것”이라며 유머러스하게 지난날을 회상했다.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소설가 문지혁이 지난 3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린 '아르떼 살롱'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최근 화두인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책이라는 매체가 5000년 역사 속에서 수명을 다해가는 과도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단하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I가 매끄러운 글을 써낼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용기를 내어 내면의 지하실을 보여주는 글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좋은 글은 유려한 글이 아니라 어딘가 깨져 있고 부서져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말을 더듬을 때 진심이 느껴지듯, 문학 역시 기술적 숙련도를 넘어 영혼이 얼마나 들어있느냐가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