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영원을 위하여' 출간
지하철서 영문으로 쓴 SF
정보라 작가, 한국어로 번역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영어로 장편소설을 썼다. 왜냐고?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일생의 꿈이었으니까.
주인공은 번역가로 유명한 안톤 허(44·한국명 허정범·사진)다.
그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소설 '영원을 위하여'(반타) 출간 간담회를 열고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며 "통번역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특히 영문 소설가 커리어를 위해 영미권 출판사와 네트워킹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번역 일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인천 송도에 사는 그는 서울 구로구를 오가는 지하철에서 소설의 8할을 완성했다.
"자필로 글을 쓸 때는 약간의 딜레이가 있습니다. 그 간격 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죠. 거기에서 인류의 모든 문학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영원을 향하여'는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지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SF(과학소설)다. 나노치료와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미래를 배경으로 존재와 정체성, 사랑에 관한 서사를 펼친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해외에서 졸업한 그는 정보라, 박상영, 황석영 등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특히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각각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와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번 신간은 정보라가 직접 한국어로 번역했다. '저주토끼' 때와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그는 "정 작가님이 먼저 번역하고 싶다고 제안해주셨다"며 "나는 그게 엄청난 희생이고 영광인지 안다. 작가님이 번역을 나보다 더 잘한다"고 평했다.
그는 시인 이성복의 시론집 '무한화서'가 소설의 길잡이가 됐다고 말했다. "굳이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언어가 알아서 글을 쓰도록 내버려 두라는 이성복 시인의 당부에 영어라는 언어가 소설을 쓰도록 내버려 뒀더니 지하철에서 마법처럼 쓰였어요. 작가는 일종의 언어를 위한 비서일 뿐 무언가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향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