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료 생산 양호하지만
자동차·기계장비 특히 부진
내년 수출까지 타격 우려
◆ 경기 한파 ◆
지난달 생산·소비·투자 지표가 모두 뒷걸음질을 치며 경기 둔화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더디게 회복되는 소비와 악재가 겹친 건설업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 역시 내년부터는 대외 불확실성으로 부진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지만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선 추가적인 통화·재정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생산을 끌어내린 것은 건설업(-4.0%)과 공공행정(-3.8%)이다. 특히 건설업은 6개월 연속 하락했는데 이는 2008년 6월 이후 16년4개월 만이다. 건설업은 인건비·원자재를 포함한 공사비 상승, 높은 대출 금리에 따른 자금 조달 어려움과 주택 수요 하락 등의 악재가 겹치며 올해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광공업 생산은 산업별로 온도 차가 컸다. 반도체(8.4%)와 의료정밀과학(4.0%)은 높은 증가세를 보였지만, 기계장비(-3.8%)와 자동차생산(-6.3%)은 부진했다. 건설업 역시 4.0% 감소하며 전월(-0.7%)보다 감소폭을 키웠다. 소비도 전월에 이어 마이너스를 보였다. 소매판매가 0.4% 감소했는데, 가전제품과 통신기기 등 내구재(-5.8%) 소비가 줄어든 영향이다.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5.8% 감소했다. 지난 1월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다. 건설기성은 전월보다 4.0% 줄어든 데다 건설수주 역시 1년 전 대비 11.9% 빠졌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제조업·서비스업 생산은 견조하지만 소매판매는 1년 전과 비교하면 마이너스"라며 "설비투자는 좋은 모습으로 가고 있지만 건설 분야가 아주 어렵다"고 말했다. 통화당국과 정부의 장기 전망을 보면 더딘 경기 회복세에 대한 경계심이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앞선 6개월간 유지했던 '경기 회복'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 출범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강화된 상황에서 경기 진작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내년엔 수출 분야의 불확실성 확대 등 하방 리스크가 있다"며 "적극적인 재정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상반기 중 재정을 풀어 내수를 부양하고 기업 유동성 공급을 위해 대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수출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오히려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전히 관리재정수지는 적자인데, 내년에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로 한국의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선다면 '쌍둥이 적자'에 빠질 수 있다"며 "적자 재정을 더욱 확장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