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옥자라니? 봉준호표 인장들로 가득한 '미키17'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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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자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봉 감독 영화 중 단연코 최고"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심각하게 실망스럽다"라는 혹평도 나왔습니다. 아르떼는 <미키17>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릴레이 리뷰를 게재합니다.

세계적인 거장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2019)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2020)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 4관왕이 됨으로써 세계영화사를 새로 썼다. 이후 6년 만에 영화 <미키17>(2025)을 지구촌에 펼쳐놓았다. 한국 영화의 자부심이 된 봉 감독의 새로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의 기대와 세계적인 관심에 부응한 듯, 막대한 할리우드 자본으로 의미 깊은 영화가 우리 앞에 진격한 것이다.

지구인들이 외계 행성 니플하임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2054년을 배경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변변한 기술이 없던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사채업자를 피해 무조건 지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잘 읽어보지도 않고 ‘익스펜더블’에 자원해서 니플하임행에 탑승한다. 그런데 ‘익스펜더블’은 로봇이 하던 위험한 실험을 진짜 인간이 대신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죽게 되면 휴먼프린팅 기계에서 다시 육체가 태어나고 그간의 기억은 머릿속에 이식되는 것이다.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미키17>은 그동안 만들어졌던 봉준호 영화의 색깔과 인장이 겹겹이 들어 있으면서도 새롭게 변주됐다. 지구 밖으로 튀어 나간 이 SF는 처음부터 외계 행성에서 시작하는 에드워드 애쉬튼의 소설 『미키7』과는 달리 사업 실패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채권추심원에게 시달리면서 지구 밖으로 떠나야 한다는 당위적인 심경을 바탕으로 삼는다.

<미키17>이 장르적으로 가장 유사한 영화는 <옥자>(2017)다. 주제 면에서 인간의 과학기술 발달이 지구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각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무시하거나 경계하는 괴생물체가 실은 보듬어가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니플하임 행성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크리퍼라는 갑각류의 괴생명체를 무조건 적대시하면서 죽이려고만 드는 비행선의 사람들, 또한 ‘익스펜더블’이 죽는 것을 당연시하며 미키 반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고, 번호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바로 <옥자>에서의 적대자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옥자>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옥자>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동안 봉준호 감독을 가장 특징지었던 장르는 스릴러와 살인이 등장하는 범죄물이었다. 단편영화 <백색인>에서부터 잘린 손가락 마디가 주요 오브제로 등장하는 섬뜩한 설정이 시작되고 있다. 큰 사건 없이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조차도 아파트 지하 공간에서의 뽀일라 김 씨의 죽음이 벽에 스며 있고, 강아지 살해와 동물 유기 및 살해가 사건으로 등장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스릴러의 절정인 <살인의 추억>(2003)은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경찰의 추적과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잡지 못하게 되는 살인범과의 긴장이 잠시도 숨을 쉴 수가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괴물>(2006)은 한강 변과 한강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괴물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채 가며 공포를 조장한다. 언제 어느 때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긴장감과 사람을 훅 낚아채서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에 감춘다는 사건의 긴장감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마더>(2009)에서도 역시 여고생을 살해하여 시신을 장독대에 얹어놓은 사건과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추후 범인의 엄마가 아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아는 목격자가 사는 집에 불을 내서 목격자를 죽게 하는 사건이 들킬까 봐 마음 졸이면서 보게 하는 날 선 긴장감은 봉준호표 인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괴물>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괴물>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설국열차>(2013)에서도 제일 하위 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벽을 뚫으면서 앞으로 전진해 가면서 일으키는 유혈이 낭자한 전투 액션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 집 지하에 아무도 모르게 은거하던 근세가 갑자기 지상으로 튀어나와 기정을 죽인 후, 박 사장이 근세의 냄새에 코를 싸쥐면서 반응하는 태도를 보고 기태가 격분해서 박 사장을 찔러 죽이는 살해 장면도 바로 봉준호 감독의 인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미키17>은 그런 스릴러적 긴장감을 선택하는 대신 독재자와 독재자 주변에 기생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타자를 무조건 정복하려는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휴머니즘의 구현을 선택했다. 다분히 <옥자>와 유사한 선택을 한 것이다. 악덕 글로벌기업 ‘미란도’의 대표인 쌍둥이 자매 낸시와 루시가 본인들의 업적 과시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미키 17>의 마샬과 일파에 겹쳐진다.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봉준호 영화에서의 페미니즘 시각도 <미키17>에서도 지속된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물인 관리실 여직원 ‘현남’은 이름만 보면 남자 같고, 시간강사 ‘윤주’는 여자 이름처럼 들린다. 그에게는 아내가 벌어온 돈이 가정의 주 수입원이다. 윤주는 연상인 아내에게 꼼짝 못 하는 남성으로 그려진다. 윤주의 아내가 데려온 푸들 강아지의 이름이 여성의 이름인 ‘순자’라는 점 역시 윤주가 계속 여성을 떠받들며 지켜야 하는 캐릭터임을 강조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살인범을 찾는 중요한 열쇠를 발견하는 것은 여형사였다.

<미키 17>에서 약간 찌질한 면이 있는 ‘미키17’보다 여자 친구 ‘나샤’(나오미 아키에)가 능력적으로 훨씬 우월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미키는 함께 동침했던 냐샤가 멋진 경찰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며 옷의 먼지까지 털어주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후반부 멋진 판사 제복을 입는 나샤를 도와주는 장면으로도 변주된다. 물론 니플하임 행성의 책임자로서 연설하는 장면도 여성을 최고 리더로 세우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무엇보다도 봉준호표 인장은 코믹한 대사와 역설적인 상황에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쇄살인범을 잡는 엄중한 상황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 형사가 과학수사를 표방했지만, 실패하자 박두만보다 더 직감에 따르는 태도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코믹하면서도 교묘하게 사건과 연관되면서 영화에 재미를 준다. 또한 캐릭터의 의외성이나 아이러니한 요소가 희극성을 더한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윤주가 옥상에서 던져 죽인 강아지 ‘아가’의 주인 할머니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아가의 시신을 찾아준 현남에게 꼭 전해주라는 편지가 있었다. 간호사가 그 편지를 전해주려 하자, 큰 유산이라도 남겼을 것 같은 생각에 현남은 자신은 별반 한 일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면서 편지를 전해 받는다. 그러나 편지 안에는 “옥상에 무말랭이 있으니, 꼭 가져다 먹으라”는 내용이어서 실소를 머금게 한다. <미키17> 역시 과장된 캐릭터인 독재자 마샬(마크 러팔로)과 그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의 모습은 코믹한 정치풍자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플란다스의 개>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그동안 봉준호 영화에서 CG로 만든 괴생명체는 <옥자>는 물론 귀엽지만, <괴물>에서의 괴물도 약간 귀여운 점이 돋보였다. 흔히 영화 속의 외계 괴생명체는 대체로 징그럽고 폭력성을 지닌 괴물로 그려졌던 것에 반해 <미키17>에서의 괴생명체 크리퍼는 소설에서의 집게벌레 같은 모습을 변형시켜 크로와상 같은 겉모습을 지녔다. 입과 발은 <괴물>에서의 괴물이 움직이는 모습과 유사함도 보인다.

<미키 17>에서의 배우들의 연기도 <기생충>이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을 받았던 것처럼 연기자 모두 조화로운 연기 앙상블을 보였다. 멀티플이지만 다른 캐릭터였던 미키17과 미키18을 연기했던 로버트 패틴슨의 표정과 엑센트를 비교하는 재미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영화 <미키17>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크리퍼와의 대화를 위해 점차 진화해 가는 과학기술팀의 도로시(패트시 패런)가 개발한 통역기가 외계인과의 언어소통을 다룬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2016)와 조금 유사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 부분에서의 감동을 상쇄시키지는 않는다. 이처럼 <미키17>은 봉준호표 인장과 변주를 찾아보는 재미로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된다.

그런데 <미키17>에는 그동안의 봉준호 감독 영화와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점도 드러난다. ‘미키17’을 지켜준 여자 친구 ‘나샤’와의 가슴 뭉클한 멜로 라인이 새롭게 자리 잡은 점이다. 그동안 봉준호 영화에서는 로맨스는 나오지 않았다. 죽어야 하는 익스펜더블 미키가 들어간 유리 부스에 함께 들어가 미키를 품에 안고 있는 나샤와의 멜로 신은 그동안 봉준호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없었던 감성적 터치로 눈물이 흐르게 한다. 사랑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메시지가 그동안 봉준호 영화에서 긴장감이 주조를 이루던 것과는 차별화된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로버트 패틴슨  / 사진출처. IMDb

봉준호 감독과 배우 로버트 패틴슨 / 사진출처. IMDb

황영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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