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분석 신간 펴낸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교수
작은 빌라·멘션 여전히 상당수
가격 안정 위해 공급 확대해야
강남 성장, 한국 현대사서 중요
아파트·산업·교통이 3大 요소
‘부촌’으로만 보면 미래 못 읽어
반도체축 확대는 강남의 확장
“강남 3구의 탄생 과정을 한 줄로 표현하면 ‘정책 실패와 우연이 빚어낸 산물’입니다.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강북의 핵심 시설을 강남으로 옮기는 와중에 10·26사건이 터지면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무산된 것이 결정적이죠.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부자들은 강남에 산다’는 인식은 부동산 심리에 영향을 미쳤고, 강남을 독보적인 지역으로 만드는 동력이 됐습니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남의 탄생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현재 강남 3구의 ‘맏형’인 강남구만 하더라도 상공부·총무처 등 정부 기관을 유치하고 압구정 로데오 같은 상업지구를 활성화해 인구을 유입한다는 방침에서 시작했다”며 “정부청사가 더 남쪽인 과천에 들어서면서 먼저 이동한 ‘강북 부자’들의 존재감이 부각됐고, 이를 통해 ‘부촌’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을 출간한 김 교수는 ‘임장하는 인문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한국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를 비롯해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한국 도시의 미래’ 등의 서적을 발표하며 도시 개발과 부동산 분야에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신간은 10대 시절부터 ‘세입자’로서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에 두루 살아본 자전적 경험이 더해져 현장감을 높였다.
김 교수는 강남 3구의 성장사가 한국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변모 과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강남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강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강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진행될 도시 개발 정책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를 과거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특히 현재 강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 3개 요소인 아파트와 산업, 교통의 변화상을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강남 3구 개발은 경부고속도를 짓기 위해 영동지구를 정비하면서 시작했다”며 “이후 준공업지대와 섬유단지 계획을 폐기하고 대기업과 첨단 정보통신(IT) 기업을 유치한 게 지금의 강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형성된 개발축은 현재 반도체 산업을 중추로 경기 동남부로 뻗어 나가고 있다”며 “이는 ‘확장 강남’의 시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여 년간 급격하게 상승한 강남의 집값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 교수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강남에 아파트가 많다는 것은 선입견”이라며 “지도를 보면 거주 지역 대부분이 작은 멘션 또는 빌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찾는 아파트단지나 고급 단독주택단지는 특정 지역에 몰린 상황에서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급이 막혔다. 지역 내 신축 아파트단지들의 가격이 ‘우상향’을 넘어 급등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향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공급 확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 당시 주거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명시된 ‘1가구 1주택’이 재현돼선 안 된다고 강변했다. 당시 한 가구당 한 채의 주택만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 강제시되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 ‘똘똘한 한 채’에 올인하는 사람이 늘었고, 이것이 강남 집값 폭등의 기폭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 정책에서 강남 3구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분리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촌의 발생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부촌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도시가 활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개발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추진했던 35층 층고 제한 정책을 비롯해 과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는 이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강남 3구의 공급 확대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과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두고서는 중장기적 시선으로 도시 개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세종시는 참여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발표한 뒤 20여 년이 지난 만큼 이미 난개발이 된 상태”라며 “인접한 청주, 대전과 함께 하나의 클러스터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공기관 이전은 대상 지역 외곽에 신도시를 개발하는 형식이 아닌 구도심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는 지역 공동화 현상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