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당포 체인 이지코프가 생활비에 쫓기는 소비자와 중고 명품을 찾는 부유층을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고물가가 저소득층의 단기 현금 수요를 키우는 가운데 고소득층의 할인 명품 소비는 유지되는 K자형 경제가 매장 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금 부족 소비자 행렬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지폰과 맥스폰럭셔리 체인을 보유한 이지코프는 최근 소액 전당대출 증가와 고가 중고 명품 수요 확대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인근 맥스폰럭셔리 매장에서는 중고 에르메스 버킨백이 유리 진열장을 채우고, 도시 반대편 공항 인근 이지폰 매장에서는 네바다 주민들이 청구서를 내기 위해 200달러 전당대출을 찾고 있다.
전당포 사업자는 오래전부터 현금이 부족한 소비자의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지코프의 사업은 미국 소비자가 두 갈래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료품, 휘발유, 주거비 등 생활비가 오르면서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 소비자는 빠른 현금을 찾고, 다른 쪽 소비자는 재정적으로 더 여유로운 상태에서 고급 중고품을 싼값에 사려 한다.
팀 저그먼스 이지코프 최고재무책임자는 "1년 전보다 현금 필요성이 확실히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소비자들이 특정 소비자대출 상품 자격을 얻지 못하자 전당대출이 낫다고 판단하고 이를 통해 재정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이지코프의 럭셔리 전문 매장은 다른 주에서 오는 명품 구매자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생활비 압박은 숫자로 나타났다. 3월 31일 종료된 3개월 동안 이지코프의 전체 전당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 늘어난 3억49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 대출은 16% 증가했고, 미국 평균 대출 규모도 16% 늘어난 240달러로 올라섰다. 신용조회와 고용 확인 없이 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수요를 밀어 올렸다.
전당포는 가계 예산이 빠듯해질 때 강해지는 사업이다. 예산에 민감한 판매자는 물건을 처분할 수 있고, 할인 상품을 찾는 구매자는 싼 물건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푸에르토리코에서 600개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이지코프도 이런 흐름의 수혜를 보고 있다.
최근 오후 라스베이거스 공항 인근 이지폰 매장에는 악기, 자전거, 중고 루이비통 가방, 나이키 운동화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고객들은 계속 드나들었고, 상당수는 직원들이 이름을 알 정도의 단골이었다. 일부는 전자제품과 보석류를 살펴봤고, 다른 고객은 최대 10개월까지 비용을 나눠 부담할 수 있는 예약구매 프로그램을 이용해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제리 조리 이지코프 사업부 부사장은 고객들이 경제 상황에 맞춰 더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한 대안으로 매장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3월 종료 분기 이지코프의 상품 판매액은 전년 동기보다 27% 증가한 약 2억1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고품과 할인 상품을 찾는 소비 수요가 매출을 키운 것이다.
최대 13% 이자에도 전당 대출 증가세
전당대출은 보석, 전자제품, 악기 같은 개인 담보를 맡기고 단기 현금을 빌리는 구조다. 차입자는 유효한 신분증만 있으면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신용조회는 없고, 갚지 않아도 신용점수는 훼손되지 않는다. 대신 상환하지 않으면 전당포가 담보 물품을 팔아 대출 잔액을 회수한다.
조리 부사장은 최근 예산 압박으로 급여일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당대출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추가 소득원을 찾을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객에게 전당포가 없다면 운전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연초 대출 증가세는 특히 이례적이다. 금융서비스회사 스티븐스의 카일 조지프 애널리스트는 이 3개월 동안은 보통 세금 환급이 시작되기 때문에 전당대출 수요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대출이 늘어난 것은 가계의 현금 압박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전당대출은 무료 안전망이 아니다. 이지코프 매장에서는 거래의 35~45%에서 차입자가 대출을 갚지 못해 담보를 잃는다. 상환하는 경우에도 비용은 지역 규제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일부 주는 추가 수수료 전 월 이자율을 5% 이하로 제한하지만, 다른 주는 30%까지 허용한다. 네바다주에서는 전당포가 월 최대 13% 이자를 받을 수 있고, 5달러의 초기 수수료와 일부 물품 보관비도 부과할 수 있다.
이지코프의 3월까지 분기 매출은 전년보다 46% 늘어난 4억4700만달러였다. 조지프 애널리스트는 모든 것이 비싸졌고 이것이 좋은 대출 수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할인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고, 전당포는 비교적 좋은 가격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럭셔리 전당포 매장은 활황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인근 맥스폰럭셔리 매장은 전혀 다른 경제 현실을 보여준다. 매장에는 푹신한 가죽 의자, 따뜻한 조명, 무료 음료가 마련돼 있다. 한쪽 벽을 따라 놓인 유리 진열장에는 중고 버킨백 약 20개가 잠겨 있다. 다른 진열대에는 중고 샤넬 핸드백, 롤렉스 시계, 루이비통과 구찌 고급 신발이 놓여 있다. 일부 중고 버킨백 가격은 3만달러를 넘는다.
이 매장은 일반 전당포와 다른 고객층을 끌어들인다. 다른 주에서 명품을 사러 오는 고객도 많다. 이들은 예약구매를 요청하는 일이 드물고 대출이 필요한 경우도 거의 없다. 크리스 주얼 매니저는 일부 고객은 한 번의 큰 소비를 위해 돈을 모으지만, 많은 고객은 버킨백을 서너 개 또는 다섯 개씩 갖고 있거나 롤렉스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코프는 2022년 럭셔리 전당포 운영업체 맥스폰럭셔리를 인수하며 고급 시장 비중을 키웠다. 이 사업은 아직 작지만 확대되고 있다. 현재 라스베이거스에 3개 매장이 있고, 지난해 마이애미에 네 번째 매장이 문을 열었다. 회사는 럭셔리 매장의 별도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목표 매장 수도 정하지 않았다. 저그먼스 최고재무책임자는 현재 목표가 모든 매장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재현 가능한 모델인지 확인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초기 고급 시장 진출은 중고 명품에 대한 소비자 관심 증가에서 출발했다. 이 흐름은 회사 전체의 럭셔리 상품 확대 전략으로 이어졌다. 일반 매장에도 선별된 고급 상품을 들여놓고 있으며, 가격은 보통 럭셔리 전문 매장보다 낮다. 이제는 부유층 소비자가 자신감을 갖고 지출을 이어가는 반면 저소득층 소비자는 위축되는 환경에서 럭셔리 전문 매장이 분리된 경제의 강한 축을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안의 구조적 의미는 전당포 산업이 더 이상 저신용 소비자의 마지막 대출 창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신용대출 접근성이 낮아진 소비자가 담보를 맡기고 생활비를 조달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부유층이 중고 명품을 가치 소비와 희소성 구매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회사 안에서 200달러 대출과 3만달러 버킨백 거래가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남은 관건은 고물가와 소비 양극화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다. 생활비 부담이 지속되면 전당대출 수요는 더 늘 수 있지만, 차입자의 담보 상실과 높은 비용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부유층의 명품 소비가 견조하게 유지되면 맥스폰럭셔리 같은 고급 전당포 모델은 다른 도시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WSJ는 "이지코프의 실적은 미국 소비경제가 같은 방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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