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1842년 난징 조약 체결 후 중국에서 가장 빨리 개방한 항구도시다. 200년 가까이 중국의 글로벌 협력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상하이에는 올해 기준 다국적기업 1016개의 아태지역 본부가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수출 지원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상하이 기업들의 요구는 매우 다양하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상하이를 거점으로 아태지역 비즈니스를 활발히 추진하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이해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상하이 소재 기업이지만 미국의 민간 안전 인증기관인 UL의 인증과 미국 진출 경험을 요구한다. 유럽계 기업은 유럽연합(EU) 지침과 자사의 지속가능한 발전 계획에 부합하는 협력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상하이 기업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생활 약식과 구매 성향을 분석하고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공급망실사법 등 EU 통상정책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 상하이 시내에 가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무신사같은 한국 쇼핑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서다. 2019년 중국 1인당 GDP 1만달러 돌파 이후 중국 소비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조기업의 부상으로 중저가 가성비 시장은 중국산으로 대체됐고 수입 제품은 중고가 프리미엄 수요로 전환됐다. 패션은 생필품에서 개인의 독창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상하이 패션 바이어들의 반응은 10년 전 한국 화장품 수출이 막 확대되던 당시의 화장품 바이어와 비슷하다. 다만 한국산을 무조건 선호하기 보다는 선별된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러한 바이어의 관점은 중저가 시장에 치중된 한국 소비재가 프리미엄 수출로 전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중국 MZ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확대되는 K-패션이 중국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인식도 있다. 또한 바이어들이 브랜드를 선택할 때 선진 패션 시장 진출도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중국 소비자 반응뿐 아니라 뉴욕, 도쿄, 방콕 등 주요 패션 지역에 진출했는지, 매출이 어떤지 문의한다. 상하이 바이어를 통해 K-패션이 화장품, 식품의 뒤를 잇는 새로운 소비재 수출 스타가 되는 가능성이 보인다.
상하이 수출 비즈니스의 변화를 체감한다. 한국기업들은 상하이에서 미국, 유럽 등의 국가별 정책과 인증, 소비자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기업에 대한 협업 수요도 많아졌다. 그러나 상하이무역관 지원만으로 우리 기업들의 진출을 확대할 수 없다. 현지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서 시카고 무역관에서 미국 샘플 구매, 시장 조사를 함께 지원한다. 한국 기업에 유럽의 EU ESG·통상정책과 한-EU FTA 활용, 공급망실사 컨설팅 지원도 안내한다. 패션사업을 추진할 때는 뉴욕, 도쿄, 방콕 등 무역관과 글로벌 패션 지원을 연계해서 대중수출을 창출한다.
이제 수출은 특정 국가만 타게팅하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다. 지금까지 KOTRA 글로벌 네트워크가 점조직처럼 현지 진출을 지원했다면, 이제는 점들을 이은 선과 면이 되어 보다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글로벌 진출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이에서 시차에 맞춰 유럽, 북미, 동남아 등 무역관에 연락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KOTRA 전세계 네트워크가 협력하여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 속 새로운 수출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통상질서 재편과 공급망 디커플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하이에도 우리기업들이 진출하기 어려운 수많은 제약들이 여전히 상존한다. 그렇지만 상하이 기업들이 묻는다. 우리와 함께 상하이,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