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의 본진으로 불리는 안후이성 허페이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공장. 최근 이곳에선 극비리에 최첨단 연구개발(R&D) 라인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본딩 D램’으로 불리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생산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성능과 용량을 극대화할 수 있어 ‘메모리 반도체 게임체인저’로 통한다. CXMT는 ‘한국 기업보다 빨리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S급 엔지니어를 대거 투입했다.
D램 전문 CXMT와 낸드플래시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메모리 기업은 2년 전만 해도 저사양 칩 제조에 매달리며 매년 조(兆) 단위 손실을 보던 업체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딴판이 됐다. 경험이 쌓이고 인재와 돈이 몰리면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견줄 만한 첨단 칩을 생산하는 수준까지 실력이 올라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CXMT는 부품사 선정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애플의 신규 D램 공급사로 거론될 정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메모리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한·중 간 기술 격차가 3년 안팎으로 좁혀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 기업은 ‘실탄’ 확보에도 나섰다. CXMT는 이르면 이달 말 상하이증시에 상장하고, YMTC도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정부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공모시장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 확장에 나선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중국이 미국의 규제를 뚫고 미래 기술 선점에 나섰다는 점이다. 화웨이가 지난 5월 공개한 ‘타우의 법칙’과 관련한 기술은 AI 반도체 경쟁의 판도를 바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미 기업이 주력하는 칩 미세화가 아니라 데이터가 이동하는 시간을 줄여 전체 시스템 성능을 높이는 새로운 차원의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중국 반도체산업이 한국의 미래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YMTC 특허, 삼전닉스 압도…中 '포스트 HBM'도 넘본다
美규제로 첨단장비 수입 막히자 공정 고도화로 HBM 개발 우회
2024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 업체는 저가 범용 제품 공급사에 불과했다. 당시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 1분기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은 8%로 치솟았다.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 속에서도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자족’ 드라이브가 성과를 내면서다.
이제 중국은 범용 D램 시장을 넘어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아키텍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진단한 한·중 간 메모리 기술 격차는 약 3년 안팎이지만, 중국의 추격 속도가 매섭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리더십을 사수해야만 미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韓 독주 흔들리는 HBM·D램 전선
중국의 HBM 개발 수준은 한국에 비해 아직 열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5세대인 HBM3E 대량 생산 단계를 넘어 HBM4 주도권 싸움에 진입했다. 내년엔 HBM4E 양산에 들어간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대중 제재로 초미세 공정에 필수인 네덜란드 ASML의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입이 전면 차단되면서 개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은 우회로를 찾았다. 구형 공정을 고도화하는 멀티 패터닝 기술 등을 총동원하면서 HBM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CXMT는 생산라인의 20%를 HBM 전용으로 전환하고 HBM3와 HBM3E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양국 간 HBM 기술 격차는 5년 이상에서 3년 안팎으로 좁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우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화웨이 등 자국 AI 칩 개발사가 내수용으로 우선 채택해 실전 경험을 쌓기 시작하면 수율과 안정성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범용 D램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최신 서버와 PC의 주력 제품인 DDR5 시장에서 중국의 공세가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초호황기에 힘입어 메모리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중국산 수요도 커지고 있다.
◇ 일부 차세대 기술에선 CXMT가 우위
낸드플래시에선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0단대 후반에서 300단대 낸드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400단 이상의 극초고적층 시대로 향하면서 물리적 한계에 맞닥뜨렸다. ‘웨이퍼-투-웨이퍼(W2W)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이 필수화됐다. 이 공정은 칩과 칩 사이에 전도성 돌기(범프) 없이 반도체 웨이퍼 두 개를 직접 맞붙여 회로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첨단 후공정 기술이다. 이 영역의 특허 장벽을 선점한 곳이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다.
YMTC는 독자 기술인 ‘엑스태킹’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160단부터 최신 270단 제품까지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핵심 특허만 119건으로 한국 기업(2023년 기준 삼성전자 83건, SK하이닉스 11건)을 압도한다. 낸드 1위인 삼성전자가 차세대 V10(430단대) 이상의 트리플스택 낸드를 개발하기 위해 YMTC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을 정도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 장벽을 넘는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본딩 D램’이다. 정보를 저장하는 셀 영역과 제어 역할을 하는 주변부 영역을 각각 다른 웨이퍼에 형성한 뒤 결합하는 기술이다. CXMT는 중국 허페이에 본딩 D램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 없이도 심자외선(DUV) 장비와 멀티 패터닝 공정만으로 초고밀도 D램을 제조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B1b’ 프로젝트를 통해 본딩 D램을 개발 중이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각에선 CXMT의 본딩 D램이 기술과 속도 측면에서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트 HBM’으로 불리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D램에서도 중국은 속도전을 펴고 있다. CXMT는 서버용 DDR5 양산 경험을 발판으로 CXL 3.0 시장 개척을 공식화했다. 핵심인 컨트롤러를 확보하기 위해 자국 팹리스인 몽타주테크놀로지 등과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위를 유지한 건 미국의 강도 높은 대중 반도체 제재 영향이 크다”며 “미국 제재가 마련해준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한국 반도체가 차세대 메모리와 패키징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수/강해령 기자/베이징=김은정 특파원/김채연/원종환 기자 hjs@hankyung.com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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