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한마디가 국내 식품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지난달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그는 ‘삼겹살과 치킨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삼겹살을 찍어 먹는 한국식 기름장의 맛을 극찬했다.
K푸드 열풍이 라면과 김, 만두를 넘어 ‘참기름’으로 번지고 있다. 비빔밥이나 나물무침에 한두 방울 넣던 집밥용 조미료가 해외에서는 샐러드 드레싱과 구운 채소, 닭고기 요리에 향을 더하는 ‘한국식 풍미 오일’로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 향에 빠진 외국인들
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의 참기름 수출은 연간 약 70억원 규모다. 회사 전체 매출과 비교하면 아직 크지 않지만, 국내 참기름 수출 시장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올해 상반기 참기름 수출액은 8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16억원이다. 환율과 집계 기간 차이를 감안해도 국내 참기름 1위 업체인 오뚜기가 수출 시장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뚜기는 대만, 중국, 호주, 일본 등을 중심으로 참기름을 수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1~4월 참기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0% 증가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참기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유통 입점과 가격 운영 등을 포함한 사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 참기름은 국내 소비자에게 노란색 라벨과 병 모양으로 익숙한 장수 조미료다. 집에서 비빔밥을 만들거나 나물을 무칠 때 쓰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오랜 기간 쌓은 브랜드 인지도와 품질 관리 역량이 해외 판매의 기반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 상품이 비빔밥, 김밥, 잡채, 불고기, 두부 요리 등 한식 조리 경험과 함께 팔린다. 라면과 만두가 K푸드의 입구를 열었다면, 참기름은 그 맛을 집에서 따라 내려는 소비자가 찾는 다음 단계의 식재료다.
CJ제일제당도 참기름 수출 늘어
CJ제일제당도 참기름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국내 참기름 시장 2위 업체다. 지난해 참기름 수출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3년간 수출 연평균 성장률은 80%에 달한다. 비비고 만두와 김치, 소스류로 해외 유통망을 넓힌 경험이 참기름 같은 조미 식재료 판매에도 연결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검증된 조미료 브랜드들이 해외에서 카테고리를 넓히는 구도다.
농식품부는 참기름 수출 증가 요인으로 미국 등 주요국 창고형 매장 입점과 샐러드 드레싱 수요 확대를 들었다. 이 같은 채널 변화는 오뚜기와 CJ제일제당 같은 대형 제조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창고형 매장은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 공급, 대용량 포장, 품질 균일성을 요구한다. 국내 가정용 참기름 시장에서 생산·품질 관리 역량을 쌓은 업체들이 접근하기 쉬운 구조다.
과거 참기름은 한인마트나 아시아 식재료점에서 주로 팔렸다. 고객도 교민이나 한식당, 한식을 자주 해 먹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미국 창고형 매장과 대형 유통 채널에서 올리브오일, 아보카도오일, 각종 드레싱과 같은 진열대에 놓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식을 잘 모르는 현지 소비자도 참기름을 ‘고소한 향을 내는 오일’로 집어 들 수 있는 접점이 생긴 것이다.
용도도 국내와 다르다. 국내에서는 참기름을 비빔밥, 나물, 김밥, 무침요리에 넣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샐러드 드레싱이나 채소구이, 닭고기 요리, 저탄수 식단, 비건 요리 등에 활용된다. 올리브오일처럼 많이 붓는 기름은 아니지만, 조리 마지막 단계에서 몇 방울 넣어 향을 내는 방식이다. 고소한 향이 강해 적은 양으로도 음식 맛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현지 소비자에게 통하고 있다.
넓어지는 K푸드 소비
식품업계는 참기름 수출을 K푸드 소비 저변이 넓어지는 신호로 보고 있다. 해외 소비자가 한국 음식을 식당에서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집에서 만들어 보려 할수록 양념과 소스 수요가 커진다. 한국 음식 한 접시가 팔리면,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한 고추장과 간장, 참기름도 같이 팔리는 식이다.
다만 참기름 수출 증가가 국내 참깨 농가 소득 확대로 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원료 참깨 수입 의존도가 높아서다. 참기름 수출은 국내 농산물 수출이라기보다 식품 제조사의 볶음·착유 기술, 품질 관리, 브랜드, 해외 유통망이 결합한 가공식품 수출에 가깝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K푸드 시장이 커질수록 한식 맛을 내는 기본 재료도 같이 움직인다”며 “참기름은 규모는 작지만 해외 소비자가 한국 음식을 집밥 재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볼 만한 품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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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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