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만 좇은 붓…위대한 화가, 비루한 종말 [화폭역정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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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1793). 프랑스혁명이 공포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던 때에 그렸다. 그림 속 장 폴 마라는 당시 가장 급진적인 자코뱅파의 핵심인물이자 연일 반혁명파와 숙청 대상을 폭로하던 공포정치의 상징. 그 피의 숙청을 끝내려던 온건파 자객에 의해 집에서 암살당했다. 다음 날 국민공회에서 다비드는 이 사건을 그리겠다고 맹세했고, 마라를 문병한 기억을 살려 그림을 완성했다. 단순히 범죄현장을 재현한 기록화를 넘어 종교화의 순교 장면을 차용해 마라를 혁명의 성인으로 신격화했다. 캔버스에 유채, 165×128㎝. 벨기에왕립미술관(벨기에 브뤼셀)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1772년 여름, 막 스물네 살이 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곡기를 끊었다. 프랑스왕립아카데미의 ‘로마상’에서 두 번째로 떨어진 뒤 상심 끝에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로마상은 화가 지망생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였다. 상을 받으면 국왕의 장학생이 돼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면 왕실의 주문이 기다리는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이었다. 동료 화가가 문 앞에서 그를 달래 겨우 방에서 끌어냈다. 하지만 이듬해 그는 또 떨어졌고 네 번째 도전인 1774년에야 그 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다비드는 왕실의 돈으로 성장했다. 1775년부터 다섯 해 동안 로마에서 국왕의 장학생으로 살았고, 돌아와서는 프랑스왕립아카데미의 회원이 됐으며, 서른여섯이 된 1784년부터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주문을 받았다. 그즈음 살롱에 걸린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5)는 파리를 뒤흔들었다. 아버지가 치켜든 칼을 향해 세 아들이 팔을 뻗어 조국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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