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지하.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새하얀 배경의 스튜디오와 사무공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가 나타났다. 널찍한 소파 옆에는 옷가지와 재봉틀이 자리 잡았고, 테이블에는 '천사XO(소)녀의 모든 것'이라는 200페이지 분량의 책이 놓여 있었다. 자유로운 듯 어딘가 균형감이 느껴지는 공간. 'K팝'을 공통분모로 모인 젊은 창작자 세 명의 아이디어가 샘솟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과거 Mnet 랩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 활약했던 래퍼 캐스퍼였다. 연습생들에게 랩 레슨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곳을 찾았던 그의 현재 역할은 '비주얼 디렉터'.
뷰티 브랜드 글로우(Glow)'의 창업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캐스퍼는 "가수는 물론이고 뷰티 콘텐츠 제작과 브랜드 운영 등 다양한 걸 해왔다. 무엇보다 음악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그룹을 만들거나 음악 관련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방향성이 잘 맞는 분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캐스퍼가 속한 크루는 딥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팀이다. 2017년 설립된 딥스튜디오는 앞서 AI와 실존 인물이 같이 팀을 이룬 보이그룹 슈퍼카인드를 선보인 데 이어 전원 실존 인물로 이루어진 걸그룹 천사XO녀 론칭을 계획 중이다. 류장호 크리에이티브 사이언티스트·조범석 K팝 엔지니어가 머리를 맞대고 IP의 토대를 쌓았고, 약 3개월 전 이에 크게 공감한 캐스퍼가 합류했다. 팀명은 기존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뇌를 드리프트 해야 한다는 의미로 '브레인 드리프트 캠프(Brain Drift Camp)'로 지었다.
이들의 이력을 보면 조합은 상당히 흥미롭다. 서울대학교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하고 이후 삼성물산 패션 부문을 거친 류 디렉터가 기획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캐스퍼가 비주얼 기획 및 브랜드 디렉팅을 담당하고,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조 개발자가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플랫폼 영역을 설계해 나간다.
류 디렉터와 조 개발자는 대학교에서 문학 동아리를 함께한 친구 사이다. 의류학과 컴퓨터공학. 자칫 음악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최근의 K팝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 둘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듣는 음악을 넘어선 보는 음악으로의 진화, 진한 공감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서사, 팬들과의 긴밀한 소통까지 K팝을 이루는 여러 축을 탄탄하게 받치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업계에서 오래 활동해온 캐스퍼까지 천군만마를 얻은 두 사람이었다. 류 디렉터는 "보통 디렉터를 1명으로 두는 것과 달리 3명으로 구성해서 확실히 각각의 시너지가 있다"고 말했다.
캐스퍼는 "이 회사의 장점은 설계가 잘 되어 있다는 거다. 어떤 걸 노란색으로 정했다면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다"면서 "다만 아무리 프로덕션을 잘 만들어놔도 결과가 예쁘거나 갖고 싶지 않으면 안 된다. 난 더 반짝거리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연습생 신분에서 가수가 되면 뻔한 것들을 하기 쉬워진다. 거기에서 조금 더 변주를 주고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디션을 통해 본 연습생들만 1만6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은 딥스튜디오 신인개발팀 인스타그램을 개설해 오디션 과정을 공개해왔다. 슬로건은 '무대 하는 기계를 찍어내지 않습니다. 무대를 잘하는 훌륭한 인간을 길러냅니다'였다. 그렇게 약 3년 반의 담금질 끝에 데뷔 조가 거의 갖추어졌다.
천사XO녀로는 '첫사랑 실패 이후'를 노래할 계획이다. 첫사랑의 설렘을 주로 이야기하는 K팝의 정형성에서 벗어나,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한다. '첫사랑 이후에도 필요한 K팝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 아래 "슬픈데 춤을 춰"라는 감정을 보여줄 전망이다. 지금 세대가 공감하는 감정의 빈 공간에 천사XO녀의 음악을 채워 넣겠다는 그림이다.
류 디렉터는 "음악의 목적을 물으면 '중심'과 '가운데'에 빗대어 답한다. 중심은 위계가 있는 거고, 가운데는 가에서 몰려와서 이루는 것"이라면서 "'내가 중심에 있다'고 말하는 음악보다는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음악을 찾고 있다. 그게 천사XO녀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캐스퍼는 "멤버 모두가 이 세상 초대박 미녀가 아닌, 주인공 느낌"이라면서 "엑스트라가 없이 한 명 한 명 서사가 궁금해지는 말투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유로운 브레인스토밍, 그 안에서 한땀 한땀 철저한 기획을 쌓아 올리는 것이 이 팀의 정체성이었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천사XO녀의 모든 것'은 그간 떠올린 생각들을 모아 묶어낸 책이다. 여기서 눈에 띈 건 DIY, 가내수공업 등의 단어였다. 모든 건 92년생 류 디렉터, 95년생 캐스퍼, 90년생 조 개발자의 손을 거친다. 젊은 기운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통통 튀는 콘텐츠와 유연한 플랫폼 활용으로 천사XO의 퀄리티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앞서 AI 멤버가 포함됐던 슈퍼카인드를 선보이며 배운 점도 많다고 했다. 기술은 사람의 뒤에서 즐거움을 확장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이들은 테크 분야를 회사의 강점으로 꼽으면서도 "기술은 팬들과의 접점을 이루어내는 데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확실하게 배웠다"면서 "K팝 팬들이 2차 창작도 많이 하고 정말 재미있게 논다. 우리가 그런 걸 잘 만들어 줄 수 있다. 팬들에게 좋은 놀이터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사XO녀는 내년 1분기 데뷔를 목표로 하며, 올해 프리데뷔 퀘스트 1 '피어라 돼지' 등을 통해 선공개될 예정이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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