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 이후 우려됐던 국가적 분열의 위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헌재의 전원일치 결정이었다. 헌재가 111일이라는 장기간 숙의를 거치면서, 특히 예상 선고기일을 훌쩍 넘겨 숙고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결과를 놓고선 세간에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인용 대 기각’을 넘어 ‘몇 대 몇’ 등 분분한 관측 속에 탄핵 찬반 진영과 정치권은 제각기 유불리 계산에 몰두했다. 하지만 헌재가 내놓은 결론은 재판관 8인 전원일치 의견에 따른 ‘대통령 윤석열 파면’이었다.
헌재가 거듭된 평의를 거쳐 만장일치에 이른 과정이 어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 결론에서 보듯 재판관들 사이에 크게 의견이 엇갈렸다는 내부 갈등설은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막판까지 헌재 재판관들의 어깨를 짓누른 것은 법적인 논리를 넘어 통합의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판관 한 명 한 명은 갈라진 국론의 한복판에서 논란과 비난, 신상털기와 협박의 대상이 됐다. 선고가 끝나고도 재판관들은 여전히 신변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특히 이른바 ‘보수파’로 분류된 재판관 3인으로선 외부 압박 못지않은 내적 갈등에도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그 어떤 인연이나 이념을 넘어 일치된 의견으로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지켜냈다.국민의힘 안에는 여전히 헌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고, 일부 보수단체는 ‘헌재 해산’까지 외친다. 윤 전 대통령 역시 파면 이후에도 승복 메시지 없이 지지 세력 결집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진정 보수라면 오히려 헌재에 더욱 고마워해야 한다. 자칫 극우 세력에 휩쓸려갈 뻔한 보수를 구한 것은 그 전원일치 결론이었다. 지금 보수에 필요한 것은 흥분과 분노에서 벗어나 보수의 가치를 재구성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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