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총길이 280km에 이르는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사업 구간 내 마을 79곳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딱 한 군데가 남았다. 종착지인 경기 하남시다. 하남시는 한전이 요청한 동서울 변전소 증설·옥내화 작업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불허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정했으나 하남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동서울 변전소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수도권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을 공급할 국가 기간 전력망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설이 지자체의 몽니로 발목이 잡힌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남시는 전자파 피해, 소음, 경관 훼손 등을 문제삼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전자파 피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시설 옥내화를 통해 소음과 경관 훼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핵심 이슈는 변전소 증설이다. 한전은 현 변전소 규모를 3배 이상 늘리려 한다. 그래야 전력 소모가 큰 반도체 단지 등에 전력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남시는 옥내화는 좋지만 증설은 어렵다고 맞서 있다. 지난달 하순 김동철 한전 사장과 이현재 하남 시장이 만났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인공지능(AI)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전력 확충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한 이 시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행여 6월 대선, 내년 지방선거가 전력망 확충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이 시장이 정략을 떠나 국가 에너지 대계를 위해 조속히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국회가 지난 2월 통과시킨 전력망특별법은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은 국무총리 산하 전력망위원회가 주민과 갈등·분쟁을 조정하도록 했다. 국가 또는 사업시행자가 해당 지역에 보상이나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길도 텄다. 송전탑·변전소 등에 대한 반대를 이기적인 님비(NIMBY)로 일축하고 사업을 강행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9월 법이 시행되는 즉시 전력망위원회를 가동해 동서울 변전소 건을 다루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송전망의 절반만 쓰도록 한 규정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완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