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고령은 과거 예문 잘못 베낀 것”… 아무리 핑계가 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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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측이 계엄포고령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에 대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과거 예문을 잘못 베낀 것”이라는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있던 시절에 작성된 포고령대로 초안을 만들었고 윤 대통령은 “부주의로 간과”했다는 것이다.

포고령은 계엄 실행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만큼 계엄 주도 세력으로선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김 전 장관은 미리 작성한 초안을 계엄 선포 이틀 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지시 사항을 보완한 뒤 다음 날 윤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해서 승인을 받았다고 김 전 장관 공소장에 적혀 있다.

그런데 법률가 출신인 윤 대통령이 1987년 개헌으로 국회해산권이 폐지됐다는 사실을 몰라서 이 조항을 그대로 놔뒀다고 주장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김 전 장관 측도 “잘못 작성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의 검토를 거쳤고 착오도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 발표된 포고령 가운데 정치 활동을 금지한 사례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국회,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막는다고 한 것은 없다. ‘미복귀 전공의 처단’ 조항은 예전 포고령에는 비슷한 내용조차 없다. 뭘 보고 베꼈다는 것인지,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또 윤 대통령 측은 “국회나 선관위 출입을 막으려는 내용도 (포고령에) 없고 막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이는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다. 윤 대통령은 경찰청장에게 “국회 들어가려는 의원들 다 체포해. 포고령 위반이야”라고 지시했고, 경찰은 기동대와 버스를 대거 동원해 국회를 봉쇄했다. 선관위에도 군 병력을 보내 직원을 체포하고 서버를 뜯어내려 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에 진입한 것은 ‘흥분한 군중을 막기 위해서’라는 윤 대통령 측의 주장도 황당하다. 윤 대통령은 군에 “총을 쏴서라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문을 열고 본회의장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을 투입한 목적은 계엄 해제 표결을 무산시키려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핑계가 궁하기로서니 이제 와서 위헌·위법적인 부분은 아랫사람 탓을 하면서 얄팍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너무 용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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