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역풍이 미국 경제를 강타했다. 미 국채 금리가 뛰고 달러는 약세로 돌아섰다. 위기에 빠진 신흥국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가 마치 신흥시장 국채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은 독일과 일본 국채로 방향을 바꿨다. 달러 대체 통화인 유로, 엔, 스위스프랑 등은 강세를 보였다. 트럼프 변덕에 지친 시장의 복수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도 사태를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 국채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로 꼽힌다. 그러나 관세전쟁 여파로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보유한 미 국채를 처분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을 유인하려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 주 전 4%를 밑돌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5%대로 급등했다. 또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0 아래로 떨어졌다. 석 달 전 트럼프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9% 넘게 빠졌다.
앞서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비판했다. 이 경고가 현실이 될 조짐을 보인다. 시장은 새삼 부실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년 말 미 연방 부채는 35조 4600억 달러(약 5경 530조원)에 이른다. 국채 이자로 낸 돈만 1조 1330억 달러(약 1614조원)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금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이 신뢰를 버리면 미국도 버티기 어렵다.
현재 세계 무역결제의 80%가 달러로 이뤄진다. 일본, 중국 등 대미 무역흑자국들은 외환보유액을 미 국채에 투자한다. 따라서 단기간에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미 국채 시장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셀 아메리카’ 추세는 더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4096억 달러·3월 기준)의 약 70%를 달러로 보유한다. 총액의 4분의 1가량을 미 국채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사태 추이에 따라 통화·상품별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방안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