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졸속 의대 증원에 건보 2.9조 증발… 누구 돈으로 메꾸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후 의료 공백 대응을 위한 비상진료체계에 지난해만 1조4054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됐다. 지난해 2월부터 정부는 보건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올리고 중증·응급환자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해 왔다. 여기에 전공의 사직으로 진료, 수술이 급감함에 따라 경영이 악화된 수련 병원에 선지급한 건보 급여까지 더하면 모두 2조8895억 원의 건보 재정이 들어간 셈이다.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진찰과 중증·응급 환자 입원진료 등의 수가를 올리는 당근책으로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했다. 여기에 투입된 건보 재정이 5월 810억 원이었고 매달 늘어나더니 12월에는 4921억 원에 달했다. 약 5일간의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응급실 운영에도 564억 원을 썼다. 적자 도산 위기에 처한 수련 병원에는 1조4841억 원의 건강보험 급여를 선불로 지급했다. 정부는 차후 돌려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는 수련 병원이 제때 갚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모두 졸속 의대 증원이라는 정책 실패만 아니었다면 지출할 이유가 없었을 재정이다. 의료 공백에 투입된 건보 재정은 올해 정부의 의료 개혁 예산 2조 원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이 예산은 전공의 수련 비용과 수당 지원, 분만사고 보상, 의료진 보험료 지원, 지역거점병원과 달빛어린이병원 지원 등에 배정됐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도 줄기차게 요구했던 정책들이다. 의대 증원의 뒷감당이 아니라 진작 의료 개혁에 투자했더라면 필수·지역 의료가 이렇게 무너지지도, 의대 증원의 진정성이 의심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의정 갈등이 일 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의료공백 사태 이후 발표된 비상진료 대책을 유지하고, 의료 개혁 실행 방안을 추진할 경우 건보 적자 전환 시점(2026년)은 1년,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2030년)은 2년 빨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더욱이 건강보험은 질병에 대비한 의료 안전망 구축을 위해 국민이 낸 사회보험료가 그 재원이다. 건보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던 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무마하기 위해 이를 쌈짓돈처럼 꺼내 쓰는 것이 맞나. 졸속 의대 증원이 의료 시스템에 이어 건강보험 재정까지 흔들며 국민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