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실장은 이날 대국민 호소문이란 제목의 글을 SNS에 올려 “대통령을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며 방어권 보장을 주장한 뒤 조사 장소와 방식을 조율하자고 제안했다. 정 실장의 글은 경찰, 공수처, 대통령경호처 등 세 기관이 처음으로 3자 회동을 하기 직전에 공개됐다. 그러나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공수처 수사는 무효”라고 일축했다. 이어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선 제3의 장소나 관저 방문 조사는커녕 서면조사에도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윤 변호사의 말이 곧 대통령의 뜻이라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의아하고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실장이 대통령과 아무런 사전 협의나 교감도 없이 제3의 장소나 방문조사 방식을 언급했다는 건지도 의문이다. 정 실장이 말한 대로 “상식선에서 얘기한 것”이라면 이를 거부하는 윤 대통령은 ‘비상식적’이 된다.
사전 협의가 있었든 없었든 정 실장이 ‘제3의 장소·방문조사’를 언급한 것은 달라진 여권 기류를 반영한다. 정 실장 개인 의견인지, 용산 대통령실의 전반적 생각인지는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비서실장이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도 “맞는 얘기”라며 “불구속 임의수사가 옳다”고 호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경호처 직원들의 동요는 커지고 이번 제안에서 보듯 여권 핵심부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지만 윤 대통령만 요지부동인 형국이다. 일체의 수사를 부정해 온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지만 이는 스스로를 더욱 궁지로 모는 길일 뿐이다. 이미 불법계엄 관련으로 구속된 전 국방장관 등 9명이 줄줄이 기소됐다. 이런 마당에 책임이 가장 큰 대통령이 관저에 몸을 숨긴 채 혼자만 조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물리적으로 체포영장이 집행되는 장면을 꼭 자초해서 보여줘야만 하나. 윤 대통령이 이제라도 수사를 받을 뜻만 있다면 제3의 장소든 방문조사든 그 방식은 여러 가지 검토해볼 수는 있다. 영원히 수사를 피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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