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는 한 달 전보다 5.3% 하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줄일 것이란 전망 때문에 달러가 강세를 띤 영향이 있다고 해도 G30 가운데 원화보다 하락 폭이 큰 건 6.4% 내린 러시아의 루블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으로 제일 큰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중국의 위안(―0.8%), 멕시코의 페소(―2.2%)와 비교해도 원화 하락 폭은 심각한 수준이다.
원화가치 하락은 곧바로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요네즈를 비롯한 샐러드드레싱 가격은 이번 주 평균 20% 이상 오를 예정이고, 제과업체들은 초콜릿 등 수입 원재료 원가 상승을 반영해 10% 가까이 값을 인상했다. 물가당국의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고환율과 국제유가 상승이 겹쳐 휘발유값도 13주 연속 상승세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진행되던 2017년 초 식품류 가격이 평년 상승 폭의 갑절인 7.5% 올랐던 것과 같은 현상이 재연될 우려가 적지 않다. 고물가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킬 것이다. 탄핵사태 발생 전인 작년 1∼11월 의류, 자동차, 가전, 식품 등의 소비가 동시에 뒷걸음질 치면서 국내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21년 만에 최악이었다.정국 불안이 심해지고, 트럼프 2기 정부가 이달 20일 출범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 1500원 선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봤던 1500원대 환율이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는 ‘퍼펙트 스톰’(다발적 악재로 인한 복합 위기)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게 된다. 정부 기능 마비로 환율·물가 관리에 손을 놨다가 8년 전 탄핵 정국 때처럼 넋 놓고 경제가 충격을 맞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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