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법인세 납부 1위라는 건 정상이 아니다. 한은은 물가와 환율 등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지 영리기업이 아니다. 본연의 기능을 하는 과정에서 운용수익을 낼 수는 있지만, 해외 금융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크고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 한은이 낸 법인세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 대표기업들의 법인세를 추월했다는 것은 민간 부문의 경제 활동이 얼마나 위축돼 있고 수출과 내수 등 경기가 얼마나 나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현상 중의 하나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11조53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지난해 법인세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적자가 났을 때 차후에 이를 반영해 세금을 깎아주는 이월결손금 등을 고려하면 올해 낼 세금은 수천억 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많게는 한 해에 6조 원가량을 법인세로 내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SK하이닉스와 현대차도 각종 공제항목을 반영하면 올해 법인세가 각각 2조 원대로, 한은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기업들이 보릿고개를 넘기가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와 상호관세 부과가 다가오면서 수출에 초비상이 걸렸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며 내수가 위축되고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있다. 씨티그룹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오래 갈 경우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영국 리서치 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까지 낮춰 ‘0%대 성장’을 예상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2%로 한꺼번에 0.8%포인트나 내렸다.기업이 살아나야 세수가 늘어나고 경제도 회복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최근 여야 합의로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 등 미래산업에 50조 원을 투자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조성에 시동을 걸었는데, 기업 활력을 높이기 위한 이런 노력이 더 이어져야 한다. 미국발 관세 폭격에 기업들이 피격되지 않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 한은이 수출 기업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세금을 더 내는 기현상이 반복돼선 안 된다.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