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 칭한 2일이 밝았지만, 관세전쟁의 끝은 어디인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신뢰할 만한 위협’ 혹은 ‘미치광이 전략’인지, 아니면 그냥 변덕스러운 광인인지 헷갈린다. 불안한 상대방은 ‘그래도 뭔가 논리와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근거를 찾게 된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예언서’로 불리는 ‘미런 보고서’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관세-안보-금융의 패키지 공격
다른 나라들이 불리한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래서 먼저 꺼내든 1차 압박 카드가 관세다. 여기에 2차로 안보 위협을 더한다. 미국의 안보 우산의 혜택을 누리려면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화가치 조정에 얼마나 협조적인지, 대중국 압박에 얼마나 적극적인지에 따라 관세 수준과 안보 비용을 차별화할 수 있다.
협박에 성공해 주요국을 통화조정 테이블에 앉혀도 문제다. 달러 약세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기축통화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 미 국채 매도 압력이 높아져 금리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불안 요소다. 이에 각국이 보유한 미 국채를 100년 만기 국채나 영구채로 전환하도록 압박한다. 무이자로 초장기 국채를 떠넘기면 이자 부담 없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 별장 이름을 따 ‘마러라고 합의’를 제안했다.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플라자 합의’를 염두에 둔 것이다.
광기 또는 계산의 美, 모두 대비해야 미런 위원장의 제안대로라면 한국의 선택은 복잡해진다. 미국의 관세 공격에 대응해 ‘그동안 미국에 많이 투자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앞으로 조선, 방산 등 여러 산업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등의 설득 논리는 무의미해진다. 서둘러 카드를 열기보단 최대한 아껴두는 게 나을 수 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 및 대중 압박 동참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걱정이다. 향후 원화 절상 압력이 올 경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관세, 안보, 환율 등을 패키지로 보고 종합적인 정책 대응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대담한 구상의 현실성은 불분명하다. 동맹국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지, 특히 40년 전 일본처럼 중국을 꿇어앉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보고서는 즉흥적인 트럼프에게 합리의 외피를 씌워주는 포장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주고 따로 실속을 노리는 협상법은 여전히 유용하다. 광기의 트럼프와 철저히 계산적인 트럼프 모두에 대비한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싸늘한 도박판에 끌려 와 앉아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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