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SG 법정공시, 기업 수용성 대안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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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거래소 공시 단계를 건너뛰고 사업보고서 기반의 '법정공시'로 직행하기로 확정했다.

글로벌 투자자의 정보 수요에 부응하고 국가적인 녹색전환(GX)을 가속화하기 위해 시기적, 기후적으로 더는 미룰 수 없는 조치라는 점은 이해한다.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후·에너지·공급망 거버넌스를 구축해 우리 기업의 해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적 지향점 역시 당위성을 지닌다. 그러나 제도적 이상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이를 현장에서 이행해야 하는 기업의 현실적 역량과 괴리된다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가경제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자율공시에서 시작해 과도기 절차를 넘어, 전면 법정공시로 순차적 이행한 유럽연합(EU)과 달리 우리나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할 '거래소 공시' 단계를 사실상 생략했기 때문이다. 사업보고서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다. 기재 오류나 누락이 발생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금융당국의 엄중한 제재가 뒤따르는 법적 문서다.

재무정보와 달리 ESG 데이터,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기후 시나리오 등은 미래 예측과 추정치, 가정이 상당 부분 개입된다. 측정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공시를 강제하는 것은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법적 리스크를 지우는 꼴이다.

과도한 기업 부담은 오히려 정부가 기대한 공시 제도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기업이 방어적으로 공시하거나 데이터 수집 범위를 축소하는 '공시 최소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검증되지 않은 추정치로 포장하는 '그린워싱'의 덫에 빠질 허점도 존재한다.

제도가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해선 완급조절과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추정 정보와 예측치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 범위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한 면책조항을 촘촘히 재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가치사슬 전반의 정밀한 데이터 축적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스코프3 등의 까다로운 항목에 대해선 업종별·규모별 실무 여건을 감안한 유연하고 적절한 유예 기간 대책이 더해져야 한다.

ESG 공시 의무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우리 경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든든한 기초체력 없이 외형만 글로벌 기준에 맞춘다면 내실을 기할 수 없다. 정부는 규제의 칼날을 세우기 전에 기업이 법적 리스크 없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실행 요건을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 속도감과 현실성 사이의 현명한 균형만이 이번 제도를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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