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사모펀드(PEF) 인수전에서 고용승계가 더 이상 부수적 조건에 머물지 않는 분위기다. 비용 효율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앞세우는 PEF가 모든 인수전에서 고용안정을 약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존 인력이 수주와 품질, 납기, 고객사 신뢰를 떠받치는 회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고용승계는 단순 노무 이슈가 아니라 기업가치 훼손을 막는 투자 조건이 된다. 항공우주 부품업체 율곡 매각전에서 고용안정협약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막판 변수로 떠오른 이유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율곡 매각을 추진 중인 JKL파트너스와 WJ프라이빗에쿼티(PE) 측은 이날부터 20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율곡 노조와 협의를 진행한다. 노조 측 요구 조건을 듣고, 향후 매각 조건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기 위한 자리로 풀이된다. 율곡 노조는 매각 이후 고용승계와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이 노조와 별도 협의에 나선 것은 인수 후보들의 가격 제안 못지않게 노사 안정화 방안이 거래 성사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율곡 인수전은 현재 스틱인베스트먼트, 앵커에쿼티파트너스, KCGI, VIG파트너스 등 4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당초 본입찰에는 프리미어파트너스까지 5곳이 참여했으나, 프리미어파트너스가 인수 의사를 접으면서 후보군이 줄었다. 이번 거래는 JKL파트너스·WJ PE 컨소시엄이 보유한 율곡 지분 47.09%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대주주인 위호철 대표 보유 지분 47.23% 중 일부가 함께 매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매각 주관사는 삼일PwC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율곡의 지분 100% 기준 기업가치는 4000억원 안팎이다. 다만 장기 납품 프로젝트 수주 기대가 반영될 경우 최종 가격이 5000억원 수준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PEF 입장에서 고용승계나 고용안정 확약은 통상 부담스러운 조건이다. 인수 이후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조직 효율화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고용 관련 약속이 밸류업 전략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율곡처럼 숙련 인력과 생산현장 안정성이 품질·납기·고객사 대응에 영향을 미치는 제조업에서는 노사 안정도 거래 검토 과정에서 함께 고려될 수밖에 없다. 항공우주 부품은 고객사 승인과 납품 이력이 중요한 업종인 만큼, 인력 이탈이나 노사 갈등이 발생할 경우 단순 인건비 문제를 넘어 사업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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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
율곡은 지난 1990년 설립된 항공우주 부품업체다. 항공기 기체와 엔진 부품, 날개 구조물 가공·조립 등을 주력으로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협력사로 성장했고, 보잉·에어버스 공급망에 들어가는 항공기 부품도 생산하고 있다. 항공기 부품 제조는 단순 조립업과 다르다. 고객사 승인과 품질 인증, 납품 이력, 숙련공의 공정 이해도가 실적과 직결된다. 신규 인력을 투입한다고 단기간에 같은 품질과 납기 대응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노사 불안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경우 고객사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가치 산정의 주요 변수로는 해외 장기 납품 프로젝트가 꼽힌다. 업계에서는 해당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향후 10년간 상당한 규모의 매출 기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대 1조원 안팎의 매출 효과도 거론된다. 율곡의 2025년 매출이 1288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신규 장기 프로젝트의 수주 여부는 실적 전망과 기업가치 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려면 기존 생산 체계와 품질 관리 역량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에서 고용안정은 비용 부담인 동시에 투자 수익률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결국 율곡 매각의 관전 포인트도 가격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스틱인베스트먼트와 KCGI처럼 전략적투자자(SI)와 손잡은 것으로 알려진 후보들은 제조업 운영 역량과 고용 안정 명분을 앞세울 수 있다. SI와의 동행은 생산현장 이해도와 인수 후 운영 안정성을 강조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앵커에쿼티파트너스와 VIG파트너스처럼 단독 인수를 추진하는 후보들은 자금력과 거래 종결 확실성에 더해 노조 설득 방안과 현장 안정화 계획을 함께 제시해야 승기를 잡기에 유리할 수 있다.
M&A 업계에서는 과거 높은 가격과 빠른 거래 종결 능력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핵심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고용승계와 노사 안정, 인수 후 운영 계획까지 함께 평가받는 딜이 늘고 있다고 본다. 율곡의 경우 기존 인력이 장기 수주와 품질 신뢰를 떠받치는 구조인 만큼, 고용안정은 노조의 요구이자 기업가치 방어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안정을 기업가치 유지의 조건이자 딜 협상의 주 요인으로 보는 M&A도 늘고 있다. '공차' 우수 경영으로 이름을 날린 UCK파트너스는 재매각 과정에서 인수자를 설득해 임직원 고용 보장 조항을 매각 조건에 포함시켰다. 브랜드 운영 노하우가 축적된 인력이 남아있어야 공차의 우수한 기업가치가 유지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글랜우드PE가 최근 LG화학 워터솔루션 사업부 인수 과정에서 직원 고용 안정을 보장한 점을 높이 평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PEF가 모든 딜에서 고용승계나 무해고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기존 인력이 회사의 경쟁력인 경우에는 고용안정이 오히려 투자 수익률을 지키는 조건이 될 수 있다"며 "율곡은 항공우주 부품업체라는 특성상 숙련 인력과 고객사 신뢰가 중요해 노조 대응 방안이 우협 선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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