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을 놓고 역대 정부와 다른 길을 예고했다. 과거 정부부터 이어졌던 가격 규제 방식 대신 세액공제 방식을 택한 것. 업계는 기존과 달라진 정책 기조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전문가들도 이재명 정부가 '품질 규제'로 방향을 잡은 데 주목하고 있다.
9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공약 중 '통신비 세액공제 신설'이 주목받고 있다. 통신요금 부담을 기업이 아닌 정부가 직접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춰서다.
역대 정권은 통신비 가격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식으로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을 추진해 왔다. 휴대폰이 대중화된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 때 통신비 인하 정책이 본격화됐다. 김대중 정부는 이동통신 기본료, 가입비, 통화료 등의 인하를 유도했다.
노무현 정부는 망내 할인 요금제를, 이명박 정부는 가족 할인 요금제와 선불 요금제 인하를, 박근혜 정부는 단말기유통법(단통법)을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첫해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렸다. 윤석열 정부는 3만원대 5G 요금제와 5G-LTE 통합요금제를 출시하도록 했다.
이재명 정부의 통신비 세액공제는 근로자 본인과 자녀, 65세 이상 노부모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세액공제율은 국정과제 수립 과정에서 구체화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세액공제율 6% 안팎을 예상하고 있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이통통신요금의 6%에 해당하는 금액을 종합소득산출 세액에서 공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통신비 인하 정책 부담은 사업자들이 떠안아 왔다"며 "세액공제는 세수를 줄여 부담을 사업자 대신 정부가 떠안는다는 건데 이런 식의 정책은 처음 나온 것 같다. 통신서비스를 공공성의 관점에서 좀 더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간접 규제 기조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민 데이터 안심요금제(QoS·데이터 속도제한 상품)가 대표적이다. QoS는 데이터 기본 제공량을 소진한 후에도 제한된 속도로 추가 요금 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QoS가 요금제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면 기본 데이터를 소진해도 저렴하게 제한된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해서 쓸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요금제를 써도 속도를 제외하면 부담이 없어 통신사의 업셀링(고객이 구매하려던 것보다 더 가격이 높은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판매 방식)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같은 정책 기조에 기대감을 보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존 가격 규제 기조에서 벗어나 품질 규제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서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QoS 관련 정책은 품질을 통제해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이라며 "가격 규제는 한계가 뚜렷하다. 가격 규제 전략이 실효성이 있었다면 역대 정부가 반복해서 관련 정책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가 접어들었고, 2030년에 6G 상용화가 논의되고 있는 만큼 지금 시점에서는 가격 규제로 기업을 옥죄기보다 품질 개선 위주의 규제 방향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