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바다에 빠진 부산…"어둠에서 해방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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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부산 중구 부산근현대역사관.

인도 출신 작가 라즈야쉬리 구디의 퍼포먼스 '지나친 겸손으로는 진정한 선을 이룰 수 없다'는 그릇을 뒤집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부처가 구걸 그릇을 통해 자신의 승탑을 만들어 보여준 일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2층에서는 2004년 작고한 고(故) 박이소 작가가 생전에 남겨놓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무제(오늘)'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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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등 4곳서 전시
36개국 62개팀 작가 78명 참여
'어둠에서 보기' 주제로 형상화
관음상과 마리아 나란히 그려진
송천스님 8m 초대형 불화 압권
대나무·그릇 등 다양한 재료 표현
초량동 빈주택 전시장으로 활용도
"부산 비엔날레 키워드는 해방"

1 중국 작가 한멍윈의 'Night Sutra'. 2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3 오스트리아 작가 우버모르겐의 'The Silver Singularity'. 4 부산 비엔날레가 진행 중인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있다.   부산 송경은 기자·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1 중국 작가 한멍윈의 'Night Sutra'. 2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3 오스트리아 작가 우버모르겐의 'The Silver Singularity'. 4 부산 비엔날레가 진행 중인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있다. 부산 송경은 기자·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지난 16일 부산 중구 부산근현대역사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를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올해 초 새롭게 문을 연 이곳의 지하 금고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미술 작품들이 가득했다. 체인과 케이블을 복잡하게 엮어 권력 구조에 의한 고통을 형상화한 중국 출신 작가 지시 한의 설치 작품 '허물(3 a.m.)'은 사람들이 오가는 어두운 통로에서 주기적으로 진동하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영국 작가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의 사진 연작은 금기를 넘나드는 한편, 흑인 남성의 신체를 전면에 내세워 백인 중심의 유럽 문명을 꼬집었다. 벽면에는 구헌주 작가가 역대 직선제 선출 대통령들을 익살스러운 해적으로 표현한 연작 '무궁화 해적단' 초상화들이 관객을 맞았다.

'어둠에서 보기'를 주제로 한 '2024 부산 비엔날레'가 1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대장정의 닻을 올렸다. 전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부산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과 중구의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과 한성1918, 동구 초량동의 주택을 개조한 전시장 '초량재'까지 총 4곳에서 펼쳐진다. 세계 36개국 62개팀의 작가 78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등 34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감독은 지난 2월부터 약 한 달간 진행된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필립 피로트와 베라 메이가 맡았다. 부산 비엔날레가 2인 감독 체제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 주제인 '어둠에서 보기'는 우리가 처한 곤경과 어두운 역사, 알 수 없는 곳을 항해하는 두려움을 상징한다. 이 혼란함 속에서 대안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는 의미다. 피로트 감독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일종의 길잡이로서 해적들이 공동체 안에서 취했던 계몽주의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불교의 깨달음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메이 감독은 "여러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이 섞여 소통하고 생활하는 부산과도 맞닿아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부산 비엔날레 참여 작가는 다양한 국적과 성별, 활동 분야를 불문하고 폭 넓게 아우른다. 팔레스타인, 이란 등 중동 지역과 세네갈, 자메이카, 코트디부아르, 토고 등 아프리카 지역의 제3세계 작가들도 대거 포함됐다. 특히 미술 작가뿐만 아니라 저술가, 교사, 악기 제작자, 의사, DJ, 다학제 연구자, 종교인 등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1층을 장식한 송천 스님의 높이 8m의 초대형 회화가 대표적이다. 분명 불교의 관음상을 떠올리게 하는 불화인데, 자세히 보면 부처가 아닌 성모 마리아가 미소를 짓고 있다. 불교의 포용력과 어느 길로 가든 진리를 하나로 만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란 제목의 이 작품에 대해 송천 스님은 "밑그림은 고려시대 불화를 차용했고, 성인의 형상은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섬의 산타 마리아 도나토 대성당에 있는 기도하는 마리아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진리를 가까이하고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체도 다채롭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조 네이미는 높이 8m의 대나무 구조물에 매달린 빈티지 스피커를 통해 성장과 치유를 위한 새로운 소리와 꿈을 라디오 전파 리믹스로 송출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인도 출신 작가 라즈야쉬리 구디의 퍼포먼스 '지나친 겸손으로는 진정한 선을 이룰 수 없다'는 그릇을 뒤집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부처가 구걸 그릇을 통해 자신의 승탑을 만들어 보여준 일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에서는 부산에서 수집한 수백 개의 그릇이 승탑으로 변형된다.

부산현대미술관 2층에서는 2004년 작고한 고(故) 박이소 작가가 생전에 남겨놓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무제(오늘)'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바깥에 설치된 두 대의 감시 카메라와 전시장 내부의 프로젝터가 연동된 작품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간다. 사운드 프로젝트 특화 전시장으로 조성된 한성1918에서는 민주화 운동 당시 필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잊혔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홍진훤 작가의 흑백 비디오 '멜팅 아이스크림'이 상영된다.

부산 지역의 근대 생활상을 간직한 초량동의 빈 주택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초량재에서는 옥상 공간에 설치된 정유진 작가의 설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부서진 대형 지구본 조각처럼 표현된 '망망대해로'는 부서진 건물의 잔재 같기도 하고 난파된 해적선 같기도 하다. 17세기 중앙아메리카를 향하던 선장 프랑수아 롤로네의 난파된 해적선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혼란스러운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아마도 '해방'일 것"이라며 "해적들이 꾸린 공동체는 굉장히 급진적인 자유 공동체였고, 그 해적이 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해적이 되어 그 안에서 해방의 길을 찾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전시가 포괄하는 영역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부산 비엔날레 개최 기간에는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어둠 속의 잡담(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 △어둠 속의 연주(라이브 퍼포먼스와 디제잉 공연) △어둠 속의 탐구(체험 워크숍)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를 왕복하는 대형 크루즈선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 프로그램 등 4가지다. '어둠 속의 잡담'에는 송천, 이시카와 마오, 스테파노 하니 등 작가가 참여한다.

[부산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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