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북부지역에서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문을 연 한 고깃집. 오픈 초기만 하더라도 저녁 시간대 전체 10 테이블 중 6~7 테이블이 찼지만, 11월 중순부터는 하루 1~2팀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12월 연말 특수를 기대하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지난 3일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는 기대를 절망으로 바꿔놨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 접어든 마당에 연말 회식 수요 기대는 접는 게 낫다. 고정비 확 줄이고 버텨내야 한다"란 게 여러 해 어려움을 이겨낸 선배 자영업자들의 얘기여서다.
이는 과거 사례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정치가 극도로 불안정한 국면에 접어들면 소비와 투자는 자연스럽게 위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6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던 지난 2004년 1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 감소했다. 2003년 2분기(-0.6%) 이후 3개 분기 만의 마이너스(-) 전환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6년 4분기도 소비가 주춤했다. 2016년 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2%로 같은 해 2분기(0.8%)와 3분기(0.4%)에 못 미쳤다.
한국은행은 2017년 1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등을 살펴봤을 때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는 서비스업, 설비투자, 민간소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나 3분기 이후에는 그 영향이 점차 소멸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민간소비와 연관성이 깊은 음식·숙박, 도소매 등 전통 서비스업과 임시일용직과 자영업자에 미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고 회복 속도도 부진하다"고 짚었다. 이 분석대로라면, 최악의 자영업 불황이 최소한 내년 하반기까지 가고 심하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내년의 한국 경제 전망이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해외 투자은행(IB)인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지난 10월 말 1.8%에서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수치다. 글로벌 IB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평균도 한 달 새 2.3%에서 2.2%로 낮아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가 2.5%에서 2.2%로, 씨티가 2.3%에서 2.2%로 각각 조정한 결과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달 28일 "미국 신정부의 경제정책 향방에 따른 경기와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증대됐다"며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전망치를 1.9%와 1.8%로 제시했다. 이는 계엄 사태 후폭풍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다만 탄핵 사태가 우려할 정도의 경기둔화로까진 번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브리핑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중장기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과거 두 차례 경험을 봤을 때 이 정국이 길게 가더라도 정치적 프로세스와 경제적 프로세스는 분리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송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