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 中저가공세에… 줄줄이 문닫는 한국 패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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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F/W서울패션위크’ 현장. 동아일보DB

지난달 5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F/W서울패션위크’ 현장. 동아일보DB
지난달 5~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된 ‘서울패션위크’는 처음으로 홍보대사 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행사까지만 해도 아이돌 가수 NJZ(당시 뉴진스), 배우 이정재 등 유명 연예인들이 섭외됐지만 올해는 홍보대사가 없어지며 현장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현장에 참여했던 한 패션계 인사는 “참여 브랜드의 무게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졌고 패션과 관계없는 인플루언서들만 끌어들였다”고 꼬집었다. 서울패션위크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패션 행사다. 이 행사가 위축됐다는 것은 ‘K패션의 위축’과도 연결돼 있다. 국내 한 중견 디자이너는 “각 나라의 패션위크는 그 나라의 패션 역량을 총망라한 것”이라며 “이 행사가 부진하다는 것은 산업 전반에 닥친 위기의 일각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원 폐원, 대행사 폐업

K패션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K패션의 후방 지원군 역할을 해 온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개원 14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 연구원은 국내 유일의 패션·봉제산업 연구기관으로 2010년 설립돼 산업통상자원부나 대구시의 보조금 사업과 위탁 사무를 받아 영세한 봉제업체와 패션업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3년째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결국 폐원에 이르게 됐다.

패션업계에서는 유명한 중견 패션 에이전시 ‘나비컴’도 14일 폐업했다. 이 회사는 디자이너와 연예인, 협찬사 등을 연결해주던 회사였다. 패션 PR업계 관계자는 “옷이 안 팔리다 보니 패션 기업들이 홍보 비용을 우선적으로 줄였다”며 “올해부터는 아예 마케팅 발주가 끊겼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7만875명이던 서울 지역 봉제의복 제조업 종사자는 2023년 6만266명으로 15.0% 줄었다. 같은 기간 사업체 수 역시 1만5571개에서 1만3769개로 11.6% 감소했다. 섬유·패션 72개 상장사의 지난해 상반기(1~6월)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각 1.5%, 3.8% 줄어들었다.

●中 저가 의류 공세도 위기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알리, 테무, 쉬인 등 중국 저가 온라인쇼핑몰 영향으로 지난해 온라인무역 적자 규모가 6조235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알리, 테무, 쉬인 등 중국 저가 온라인쇼핑몰 영향으로 지난해 온라인무역 적자 규모가 6조235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K’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K패션은 K뷰티, K푸드에 비해 수출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무채색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의류 성향이 외국인들의 눈에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며 “식품, 뷰티 등에 비해 구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패션이 아직 외국에 빠르게 침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패션업계 부진의 원인으론 불경기로 인한 소비 위축이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소비지출에서 의류·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겨울옷 판매가 늘어나는 4분기(10~12월) 5.9%까지 회복했지만 6~8%를 유지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셈이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의 저가 의류 공세도 국내 패션업체들의 위기를 더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소비자들은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의류(40.1%)를 생활용품(53.8%) 다음으로 많이 구매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내수 침체 속에서 소비자들이 의류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싼 가격의 C커머스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기업들은 국내에서 소비자를 끌어당길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내수를 넘어 동남아시아 등에 K패션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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