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경멸을 낳는다(Familiarity breeds contempt)’는 영미권 속담이 있다. 일반화는 어렵겠지만, 실내악 계를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곤 한다. 저명한 악단 중에도 건조한 업무 관계에 머무는 팀들이 적지 않다. 연습 시간 외에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단원들이 비행기에서 떨어져 앉고, 각기 다른 호텔에 투숙한다는 사중주단도 있다.
미국의 스타 듀오, 첼리스트 요요 마(Yo-Yo Ma, 1955~)와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Emanuel Ax, 1949~)의 끈끈한 동행은 그래서 더욱 특별해 보인다. 반세기가 넘도록 호흡을 맞추어 온 두 대가가 서로에게 보내는 존경과 애정은 유별나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젊은 시절 아내와 요요를 만난 것”이라는 액스의 말에서 이들의 우정이 음악적 차원을 훌쩍 넘어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로를 드높이는 인품
요요 마와 이매뉴얼 액스는 자신들을 ‘나이 든 부부’ 같다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실내악 인생은 서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김영욱과 함께했던 마-액스-김 트리오, 아이작 스턴·제이미 라레도와의 사중주, 그리고 현재 이어가고 있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의 삼중주는 모두 이 듀오가 확장된 결과다. 이러한 앙상블들을 아울러 총 스물여섯 개 앨범을 냈고, 그중 다섯 개가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인연은 1971년 줄리어드 음악원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원 카페테리아에서 처음 만난 요요 마는 이매뉴얼 액스가 궁금해하던 인물이었다. 액스는 첼로 교수 레너드 로즈(1918~1984)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반주를 맡고 있었는데, 교수가 자신에게 대단한 15살 제자가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흥미가 생긴 액스는 요요 마의 카네기홀 데뷔 독주회에 찾아갔고, 어린 첼리스트의 솜씨에 압도당한다. 액스에 따르면 그가 당시까지 접해본 가장 경이로운 현악 연주였다고. 빠르게 친해진 두 사람은 1973년 말보로 페스티벌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었고, 그로부터 6년 뒤 본격적인 듀오 활동에 나선다. 요요 마는 자신의 많은 부분이 ‘마니(이매뉴얼 액스의 애칭)’와 처음 함께하던 이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50여년간 수없이 무대를 함께하면서도 한결같은 유대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요요 마는 재작년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액스와의 협업을 “위계적일 수 없다는 공화주의에 대한 헌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들이 그저 스타 연주자의 ‘반주자’로 소개되는 경향에 반하여, 음악적 평등이라는 이상 위에서 관계를 다졌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요요 마와 액스는 싸우는 법이 없다고 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겠지만, 리허설을 대하는 태도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연습을 ‘다양한 해석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무대에서는 즉흥성이 자연스레 발휘되도록 놓아둔다.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각자의 방법을 모두 시도해 보고 결정을 내린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친구 사이라면 함께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의 90%는 이미 충족된 셈”이라는 액스의 언급에서 이들의 리허설이 어떤 모습일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198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요요와의 파트너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끔은 실내악이 마치 사교춤 카드리유(quadrille)처럼 ‘여기서 내게 자유를 주면 저기서는 네게 자유를 줄게’라는 식이 되기도 한다. 그런 방식엔 우리 둘 다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더 시간을 쓰고 싶다고 하면, 요요는 단순히 ‘좋아, 그렇게 해’라고 말할 인물이 아니다. 왜 내가 그것을 원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물론 나 역시 같은 태도로 응한다.”이들의 따뜻한 인품은 공연장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음악계가 멈추었던 2020년, 요요 마와 액스는 음향 시스템을 갖춘 트럭을 타고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트럭 위 연주회’를 열었다. 학교, 병원, 소방서, 물류 센터, 농장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들을 만나며 희망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 사회 프로젝트 뮤직 포 푸드(Music for Food)를 지원하고, 청소년들의 환경 보호 활동을 추진하는 비영리단체 그린에이저(Greenager)를 위한 자선 공연에 참여하기도 한다.
다시, 베토벤
2020년 여름, 두 친구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약 40년 만에 재녹음했다. 제목은 <눈물 속의 희망(Hope Amid Tears)>. 베토벤이 그의 첼로 소나타 3번 악보에 ‘Inter lacrymas et luctus(슬픔과 눈물 가운데)’라는 표현을 써놓은 것에서 착안했다. 베토벤이 당시 나폴레옹의 오스트리아 침공으로 인해 고뇌에 빠져 있었음에도 작품에 밝은 기운이 가득한 것처럼, 팬데믹 가운데서 긍정적인 힘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팬데믹은 이 듀오가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전곡과 더불어 교향곡 전곡을 삼중주 편성으로 녹음하는 <셋을 위한 베토벤(Beethoven for Three)>이다. 브람스 피아노 삼중주 전곡 녹음을 함께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가세했다. 아이디어는 요요 마가 냈다. 팬데믹으로 오케스트라가 멈추었으니, 베토벤이 활동하던 당시처럼 교향곡을 실내악 편성으로 연주해보자는 것이었다. 베토벤이 직접 편곡에 관여한 교향곡 2번으로 시작했고, 영국 작곡가 콜린 매튜스에게 편곡을 의뢰했다. 현재까지 네 장의 앨범을 발매해 프로젝트의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 내년 여름에는 교향곡 7번과 피아노 삼중주 1번·2번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카바코스는 강한 개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다. 직선적이고 서늘한 그의 스타일이 요요 마와 이매뉴얼 액스의 온화한 연주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의 연주는 ‘각자 열심히’와는 거리가 멀다. 카바코스의 연주에 긴밀히 조응하는 앙상블에서 배려와 조화를 중시하는 두 사람의 음악관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액스는 요요 마와의 우정이 없었다면 자신이 “현재와 전혀 다른 사람이자 다른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고, 아마 그 모든 면에서 훨씬 못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로의 인간적 성장을 이끄는, 세월이 흐를수록 마모되기는커녕 더욱 푸르러지는 우정. 이러한 관계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두 노대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든다.
임세열 칼럼니스트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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