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첫 로맨스 영화 ‘미키 17’, 인간 냄새 가득한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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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8일 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
정치풍자-계급문제 등 곳곳 채워
주인공역 패틴슨 “흔치 않은 작품
‘스타워즈’급 스케일에 유머 가득”

영화 ‘미키 17’은 복제 인간인 17번째 미키와 18번째 미키가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영화 ‘미키 17’은 복제 인간인 17번째 미키와 18번째 미키가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우리끼리는 ‘발냄새’ 사이파이(sci-fi·공상과학 작품)라고 불렀어요(웃음). 아닙니다. 그냥 인간 냄새 나는 사이파이라고 소개할게요.”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특유의 ‘뽀글머리’가 더 풍성해진 봉준호 감독(56)은 왠지 “사이파이”란 표현부터 귀에 감겼다. 공상과학(SF)을 원래 미국에선 사이파이라 부르듯, 2025년 선보이는 그의 최신작 ‘미키 17’은 100% 할리우드 영화다. 왠지 낯선 듯 친숙한 그 모습. ‘봉준호’가 6년 만에 돌아왔다.

‘미키 17’은 복제 인간이 가능해진 근미래를 다룬 작품.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드라마에 주목한 특유의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다. 그 역시 “인간 냄새 가득한 영화”라며 “평범하고 힘없고 어찌 보면 불쌍한 한 청년의 얘기”라고 설명했다.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봉 감독은 “처음부터 미키 역에 패틴슨이 떠올랐다”며 “멍청하고 불쌍한 17번째 미키,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18번째 미키를 모두 소화해야 해 사실상 1인 2역”이라고 했다. 뉴스1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봉 감독은 “처음부터 미키 역에 패틴슨이 떠올랐다”며 “멍청하고 불쌍한 17번째 미키,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18번째 미키를 모두 소화해야 해 사실상 1인 2역”이라고 했다. 뉴스1
“논두렁을 배경으로 형사와 경운기가 등장하는 영화(‘살인의 추억’)를 만들다가 이런 영화도 찍네요. 영화 ‘듄’처럼 서사적이고 웅장한 SF는 아니지만, 곧 닥칠 수도 있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하하.”

‘미키 17’은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영화 ‘기생충’(2019년) 이후 봉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제작비가 1억5000만 달러(약 217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작으로 다음 달 28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다음 달 13일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 영화제 스페셜 갈라 부문에도 초청됐다.

영화 원작은 미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 얼음으로 뒤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복제 인간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끊임없이 폐기됐다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간담회 직전 공개된 20분가량의 푸티지(footage·일부 편집본)도 이런 설정에 집중했다. 미키의 동료는 죽어가는 그를 보고 히죽거리며 “잘 죽고 내일 봐”,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말한다. 우주에서 위험 업무를 수행하던 중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몸이 실험용으로 잔인하게 쓰여도 동료들은 신경 쓰지 않고 농담을 던진다.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로버트 패틴슨. 뉴스1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로버트 패틴슨. 뉴스1
봉 감독과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패틴슨은 “아주 빨리 재미있게 읽은 미친(crazy) 시나리오”라며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한 거대한 스케일의 SF 영화에서 이처럼 가볍고 유머러스한 장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흔치 않다”고 자신했다.“봉 감독님은 지금 세계의 모든 배우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4, 5명의 감독 가운데 한 분이죠.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당연히 빠르게 손을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봤던 ‘살인의 추억’도 굉장히 심각한 주제를 (유머를 사용해)자유롭게 넘나드는 영화였죠.”

봉 감독의 날카로운 비판의식도 여전했다. 보험 적용도 못 받는 노동자 미키와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인 히에로니무스 마셜(마크 러펄로)의 대비는 빈부와 정치에 대한 풍자를 가득 담아냈다. 원래 소설에서 미키의 직업은 역사 교사지만, 영화는 마카롱 가게를 창업했다가 망한 자영업자로 바꿔 현실성을 높였다.

봉 감독은 “주인공이 극한에 처해 있는 노동자다 보니 계급 문제가 스며들 수 있다”며 “‘괴물’ ‘설국열차’ ‘옥자’처럼 이번 작품도 정치적 풍자를 담고 있다”고 했다. 미키 7을 17로 바꾼 이유도 “더 일상적이고 다양한 죽음을 통해 노동자의 애환을 표현하고 싶어 7번에서 17번 죽는 걸로 설정했다”며 “영화에서 미키는 훨씬 외로운 캐릭터”라고 했다.

영화 배경이 가까운 미래인 2050년대인 점도 설명했다. 봉 감독은 “10년 전만 해도 우리가 챗GPT를 보며 대화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2, 3년 뒤라도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AI)이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며 “AI가 절대 쓰지 못하는 시나리오를 해마다 한 편씩 써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세계가 기다리던 거장 감독과 세계적인 스타 배우의 만남. ‘미키 17’의 감독과 주인공은 이번 작품에서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을까.

“외계인과 대화하는 장면요. 봉 감독이 만든 외계어로 혼자 말하는데 정말 태어나서 스스로가 가장 한심하게 느껴지는 ‘현타’가 왔어요. 영화에선 좀 덜 멍청하게 나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하하.”(패틴슨)

“감독 필모그래피 처음으로 작품에 ‘사랑’ 이야기를 담았어요.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너무 뻔뻔하지만, 사랑을 다룬 장면들이 있어서 뿌듯합니다.”(봉 감독)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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