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마음대로 의료비 책정…비급여 실손보험금 1년간 5.7兆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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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마음대로 의료비 책정…비급여 실손보험금 1년간 5.7兆 달해

지난해 20대 여성 A씨는 비만 관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 B의원을 방문했다. 상담실장은 A씨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는지 물은 뒤 ‘비만 클리닉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총 10차례 수액 치료와 비만 주사, 체외충격파 치료 등을 합해 치료비는 250만원에 달했다. 상담실장은 “실손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체형 개선 목적의 비만 치료는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B의원은 실손보험 처리가 가능하도록 진단서에 ‘두통’ 병명을 기재했다.

◇ 동네 병원 실손보험금 ‘눈덩이’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이 일부 의료기관과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 속에 곪아가고 있다. 비급여 진료 의존도가 높은 동네 병의원을 중심으로 실손보험금 지급액이 급증하면서다. 지난해 일반 병의원의 비급여 보험금 증가율은 상급종합병원의 세 배 가까이 됐다. 사직 전공의들이 동네 병의원 가운데 ‘돈 잘 버는’ 피부과·성형외과·정형외과 등에 재취업하며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5대 손해보험사의 지난해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9조8008억원으로 전년 대비 7821억원(8.7%) 증가했다. 5대 손보사의 실손보험금 가운데 비급여 관련 지급액은 약 5조7627억원(58.8%)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비급여 보험금 증가액은 4539억원에 달했다.

병원급별로 보면 규모가 작은 병의원일수록 비급여 보험금 비중이 높고 증가폭도 가팔랐다. 1차 병원을 통해 지급된 보험금 가운데 비급여 비중은 66.0%에 이른다. 2차 병원의 비급여 비중은 60.5%, 3차 병원은 35.9%로 낮은 편이다. 동네 병의원일수록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등에 대한 진료비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차 병원의 비급여 보험금 증가율(9.1%)은 3차 병원(3.2%)을 압도했다.

비급여는 진료 대상, 진료량, 진료 수가 등을 통제받는 급여와 달리 병원이 마음대로 의료비를 책정할 수 있다. 보건당국 통제 밖에서 의료기관이 가격을 임의로 정하고 과잉 진료할 여지가 크다. 가입자도 실손보험의 자기부담금만 내면 고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보니 도덕적 해이가 극심하다.

◇ 필수의료 붕괴, 건보 재정 고갈

문제는 비급여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필수의료가 붕괴하고 건보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진료 시장이 커지면서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비급여 진료 중심의 개원을 선택하고 있다.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를 할 때 진찰, 물리치료 등 급여 진료가 함께 발생하면서 건보 재정 고갈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집단으로 사직한 전공의들이 동네 병의원, 그중에서도 주로 피부과 등에 재취업한 것이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 9222명 중 5176명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했다. 이 중 4325명(83.6%)이 의원이나 일반 병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급에 취직한 사직 전공의(3023명) 가운데 산부인과(80명) 소아청소년과(45명) 등 필수과에 재취업한 사례는 17.9%에 그쳤다. 반면 정형외과(254명) 이비인후과(229명) 피부과(206명) 등 인기 과에 재취업한 전공의는 절반을 훌쩍 넘었다.

전문가들은 실손보험과 비급여의 만성적 문제가 극에 달한 만큼 의료개혁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량과 가격 등을 의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도록 가격 규제 및 진료 기준을 마련하고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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